김동훈 < 연세대 교수 / 경영학 >

벨기에산 돼지고기의 다이옥신 파동으로 한때 사회적 긴장감이 높았다.

그러다 어느덧 기억 속에서 차차 사라져가는 듯하다.

이 일을 겪으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

얼마전 신문을 보니까 다이옥신 파문으로 인해 국내산 돼지고기도 안팔린다
는 보도가 있었다.

사태가 이렇게 돌아가다 보니 국회의원들까지 나서서 국산 돼지고기의
안전성을 보여준다며 공개적으로 돼지고기를 먹는 웃지 못할 행사까지
가졌다.

또 이번 파동으로 인해 국내 축산농가가 위축되는 것을 우려해 정부는
1백10억원의 비축자금을 앞당겨 지원키로 했다.

물론 축산농가에 대한 지원을 반대할 생각은 없다.

단지 이러한 일로 우리 축산농가가 위축될 수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다이옥신 파동은 벨기에산 돼지고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인데 소비자들이
국산 돼지고기까지 덩달아 기피하는 이유는 무얼까.

물론 국산 돼지고기의 안전성 자체에 대해 믿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시중에서 한국산이라고 파는 것이 진짜 한국산인지가
의심스러워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래야만 하는 우리 자신이 참 안타깝다.

또 우리를 이렇게 길들여지게 만든 일부 기업(대기업에서 동네 가게에
이르기까지)이 미련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것은 단순히 속이고 속이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다.

고객에 대한 장기적인 안목의 문제이고 기업 이윤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를
판단하는 문제이다.

지하철을 타거나 길을 걷다 보면 물건 파는 사람을 가끔씩 보게 된다.

볼펜 벨트 심지어는 주방용품까지 다양한 제품을 팔고 있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굉장히 설득력 있게 말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럴듯한 설명에 매료돼 물건을 사보면
생각했던 것만큼 쓸모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심지어 물건을 살 때 들었던 얘기가 거짓인 경우도 있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난 후 다음에 그 상인을 또 만난다면 웬만해선 그
사람에게서 다시는 물건을 사지 않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상인은 그것이 별로 두렵지 않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평생 지하철을 타고 다녀도 계속 새로운 고객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상인은 신규고객 확보에만 신경을 쓸 뿐 이미 한번 물건을 산
고객은 안중에 없다.

문제는 이같은 "한탕 세일"이 일부 기업들에도 스며있다는 점이다.

과연 기업들이 그런 영업전략으로 장사를 계속 할 수 있을까.

절대 안된다.

기업의 진정한 이윤은 신규 고객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재구매 고객으로
부터 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구매는 고객 만족이 있을 때에만 일어난다.

그러니까 결국 기업의 이윤은 고객 만족으로부터 나온다.

이러한 진리를 모르는 기업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위를 돌아보면 고객 만족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이 조금은 왜곡돼
있지 않나 하는 대목들이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고객 만족을 위해서는 추가적인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의무감을 갖는 것 같다.

예를 들어 개장시간 직전에 백화점 문 앞에서 기다리다 보면 안에서
직원들이 줄을 서서 인사를 연습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개장해서 들어가면 물론 인사를 한다.

어떤 은행에 가면 "고객만족 헌장"이라는 것이 벽에 붙어있기도 하고 모
전자회사에서는 "4월은 고객 만족의 달"이라는 광고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활동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고객 입장에서 인사를 받는 것은 안 받는 것보다 좋다.

또 기업 입장에서 보면 고객 만족을 위한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하지만 인사를 하고 제자리로 돌아간 백화점 직원은 당장 물건을 파는
데에만 몰두할 뿐 고객의 돈을 가장 현명하게 쓰도록 도와준다는 생각은
별로 안한다.

전자제품을 팔 때도 그렇다.

4월에는 고객을 만족시키고 5월엔 만족시키지 않을 것인가.

어떤 특정한 달에만 고객에게 특별히 해주는 것보다는 언제라도 고객에게
가장 적합한 제품과 서비스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진정한 고객만족이다.

고객만족을 하나의 이벤트로 생각하는 한 기업에 고객은 그저 물건을 팔
대상으로만 보인다.

또 매출에만 급급한 나머지 결국 소비자들의 신뢰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이때 손해를 보는 쪽은 소비자만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더 큰 손해를 보는 쪽은 기업이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가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 dhkim@ bubble.yonsei.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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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61년생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학박사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