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버트 나이스 국제통화기금(IMF) 아.태담당국장이 이번에도 예외없이 재벌
개혁에 대한 충고를 잊지 않았다.

그는 강봉균 재정경제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기업 구조조정에 문제가
있다"며 강도 높은 재벌 개혁을 요구했다.

빠른 회복세를 타는 한국 경제를 칭찬하면서도 구조조정을 추진해 온 기업의
노력에는 점수를 주지 않는 듯 했다.

한마디로 부진한 재벌 개혁이 한국 경제 회복의 걸림돌이 될 것이란 점을
완곡한 화법으로 경고했다.

나이스 국장은 재벌 개혁에 대한 평가를 묻는 기자들에도 "부진하다"고
못박아 답했다.

특히 일부 대기업의 구조조정이 미진한 만큼 재촉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재벌을 채찍질 하지 않으면 꼼짝도 않는 마소처럼 여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그가 매번 이 점을 강조할 리 없다.

물론 서방 인사중 나이스 국장만 이런 얘기를 한 것은 아니다.

달포전 미국 서머스 재무장관도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회의에서
우리 정부가 5대 재벌에 대한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즈니스 위크 최근호(6월7일자)도 우리 기업이 구조조정에 미온적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나이스 국장이나 서머스 미국 재무장관이 유독 "재벌 개혁"만을 강조하는
뜻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진정으로 우리 나라 경제를 걱정해선지 아니면 우리 정부의 재벌개혁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해선지 분명치 않다.

왜 대기업 개혁보다 지지부진한 공공 및 노동 부문 개혁에 대해서는
일언반구가 없는지 더더욱 모를 일이다.

외환위기가 터진후 개혁을 추진해온 대기업 입장에서는 섭섭하기 짝이 없는
충고다.

충고 자체를 두고 뭐라는게 아니다.

충고를 하려면 좀 더 구체적인 대안을 갖고 해야 구조조정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단지 몸집(생산능력)을 줄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개혁을 강요하는 것은 우리
현실을 무시한 처사다.

재계는 현재 채권단과 구체적인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맺고 개혁을 추진중
이다.

부채를 줄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이 와중에 서방 인사들이 섣불은 평가를 하다 자칫 오해를 살 수 있다.

우리나라 재벌 기업은 선진국 기업과 세계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무서운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 이익원 산업1부 기자 ik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