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10대 준수사항"이 공직사회를 일대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공무원들은 각종 애.경사를 맞아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가 하면 오래된
미풍양속을 이렇게 하루아침에 뒤바꿔놓아도 되는 거냐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일부 공직자들은 10대 준수사항이 향응금지 등 내용은 좋을지 몰라도
뒤집어보면 공무원을 죄인시하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며 억울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이때문에 공직사회에서는 관혼상제를 둘러싸고 갖가지 백태가 연출되는 등
전례없는 혼란이 일고 있다.

<> 반응과 불만 =공무원들은 한결같이 "현실을 무시한 악법"이라며
맹비난하고 있다.

이들은 "하객과 문상객들의 품앗이로 경조사를 치르는 게 오랜 관습인데
공무원에게만 재갈을 물리는 것은 억울하다"는 반응들이다.

특히 일부 공무원들은 "이번 조치는 공무원들이 마치 경조사를 통해 큰
돈을 챙겨온 것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각 정부부처와 산하기관의 감사실에는 "사돈 쪽도 받으면 안됩니까"
"동료끼리 줘도 안됩니까"라는 식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또 과천과 세종로 관가에서는 "받지 말라는 규정은 있는데 주지 말라는
규정이 없는 이유는 뭐냐"는 비아냥마저 나오고 있다.

농림부의 모 간부는 "과장급 이상은 경조금을 주기만 해야하니..."라며
"경조금을 받기 위해 하위직으로 내려가야 할 것 같다"고 농반진반의 평가를
내렸다.

<> 백태 표출 =큰 혼란을 겪고 있는 곳은 결혼식장과 상가등 현장.

준수사항이 완전히 알려지지 않은 탓에 경조금 부조를 놓고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경조금을 놓고 가려는 하객과 문상객들,이래선 안된다며 만류하는 공직자들
간 입씨름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굳이 축의금을 내려는 하객을 사돈쪽 접수처로 안내하는 희한한
경조문화까지 생겨나고 있다.

한 공무원은 "이러다간 사돈 쪽과 접수대를 통합하는 신풍속도가 등장
할지도 모르겠다"며 비아냥댔다.

지난 24일 순직한 신동영 고양시장에 대한 조의 형식을 놓고 경기도는
한때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규정만을 놓고 보면 공직 선거법의 적용을 받는 임창열 지사의 입장에서는
조의금으로 1만5천원까지만 허용되지만 이를 "조의금"이라고 보낼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대다수였기 때문.

결국 행정자치부로부터 "순직한 순간부터는 공직자가 아니다"는 유권해석을
받고서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 기업체 및 하위직원 반응 =경조사때나 한번 찾아가는 기업체 인사들은
경조금을 내고 싶어도 공무원 당사자가 "다칠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건교부 산하 모 간부 자녀의 결혼식에 다녀온 모 기업 홍보직원은
"신혼여행지에서 쓰라며 혼주 몰래 신랑 주머니에 찔러넣어 줬다"고 전했다.

모 공단의 직원들은 26일로 예정된 이사장 딸의 결혼식을 앞두고 "평소
이사장으로부터 혼사 및 상례 때 많은 경조금을 받았는데 느닷없이 준수사항
이 생겼다는 핑계로 모른 척할 수도 없는 것 아니냐"며 고민중이다.

한 공무원은 "공직을 이용한 비위를 막기 위해 마련된 규정이 공무원을
"더불어 살기 싫은 인정머리 없는 사람"으로 비쳐지게 하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 사회부 soci@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