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도 양보할 수 없습니다. 스크린쿼터의 현행유지는 우리영화의
생존을 뒷받침할 최소한의 필요조건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한국영화의무상영제도 현행유지를 위한 비상대책
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정지영(53)감독.

그의 핏발 선 두 눈엔 "스크린쿼터 절대사수"란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다.

지난 18일 광화문빌딩 앞 광장에서 1백여 영화인과 함께 삭발한 머리모습도
그렇다.

"정부가 영화인을 기만하고 있습니다. 2002년까지는 논의대상에도 올리지
않겠다던 스크린쿼터를 당장 축소할 수 있다는 쪽으로 얘기하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그는 스크린쿼터의 축소가 우리영화에 대한 "사망선고"와 같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우리의 문화산업과 문화전체의 뿌리를 밑둥까지 잘라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특히 미국측이 현행 연간 1백46일인 스크린쿼터를 18일로 줄이라고 요구하는
것은 우리 영화계가 맺을 수 있는 과실을 싹쓸이하겠다는 음모라고 성토했다.

"정부가 스크린쿼터 축소안을 발표하는 즉시 우리영화계는 초토화됩니다.
작은 규모지만 끊이지 않았던 투자가 썰물처럼 빠져나갈게 뻔합니다. 우리
영화를 걸 영화관이 없어질 터인데 누가 돈을 들여 영화를 만들겠습니까.
스크린쿼터가 엄연히 살아있는 지금도 할리우드 직배사의 입김으로 우리영화
가 딛고 설 땅이 좁아지고 있지 않습니까 "

그는 정부가 스크린쿼터를 양보하는 대신 영화계에 대한 지원강화 방안을
검토하는 것 역시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이상 싹을 틔울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진 토양을 비료로 회복시킬수
없다는 논리다.

"호주에는 스크린쿼터가 없습니다. 이로인해 호주영화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호주정부가 뒤늦게 영화계에 자금을 쏟아부으며 영화제작을
지원하고 있지만 호주에서 상영되고 있는 자국영화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미국과 북미자유협정을 맺고 있는 멕시코의 영화계도 스크린쿼터를 없앤 후
기반을 잃었습니다"

그는 스크린쿼터를 현행대로 유지하면서 정부지원을 통한 영화산업 인프라
구축을 하루빨리 앞당겨 자생력을 키우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영화가 상품성과 유통력을 확보한 다음에 스크린쿼터 축소여부를
검토하는게 순서라는 것이다.

"스크린쿼터와 관련한 협상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기의 문제가
중요합니다. 눈앞의 경제적 이익에 급급해 문화와 정신을 흥정거리로 삼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그는 영화인,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해 끝까지 싸운다는
각오다.

검열철폐, 외화직배 반대 등 그간의 활동에서 비롯된 투사 이미지를 벗고도
싶지만 지금은 상황이 너무 급박하다.

"21세기는 문화산업과 이미지의 시대입니다. 영화산업이 빚어내는 이미지의
파급력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를 포기하는 것은 생존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 김재일 기자 kjil@ >

< 정지영 감독 약력 >

<>46년 충북 청주
<>고려대 불문과
<>데뷔작 "여자는안개처럼 속삭인다"(82년)
<>"남부군"(90년), "하얀전쟁"(92년),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94년),
"까"(98년)
<>순천향대 연극영화과 교수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