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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년 충북 영동출생
<> 광주고 서울대 상과대 졸
<> 62년 국민은행 입행
76년 임원부속실장
77년 노량진지점장
80년 조사부장
83년 종합기획부장
86년 국제부장
87년 강남지역본부장 부행장보
92년 부행장
98년 은행장
<> 부인 최선자 여사와 1남 2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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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행 7층에 있는 은행장실 문은 항상 열려있다.

송달호 행장(62)은 부행장보로 있을때부터 10년 넘게 집무실 문을 닫지
않았다.

직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누구든 자유롭게 만나겠다는 뜻에서다.

열린 문처럼 글로벌 스탠다드에 걸맞는 투명한 경영, "21C 슈퍼 리딩뱅크"를
선언한 송 행장이 각별히 신경쓰는 부분이다.

주변사람들은 송행장의 경영스타일을 "정중동"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앞에 나서서 일을 주도하며 튀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늘 신중하게 판단하고 움직인다.

일단 결심이 서면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소신파로 정평이 나있다.

대동은행 인수, 장기신용은행과의 합병, 5억달러 외자유치 등 굵직굵직한
일들을 성사시킨 힘이기도 하다.

송 행장은 골드만삭스로부터의 외자유치가 국민은행이 도약할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골드만삭스가 은행에 투자한 것은 전세계적으로 처음입니다. 우리 은행의
전망을 밝게 보고 있다는 증거죠. 2001년 BIS기준 12%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하반기 5천억원을 추가로 증자할 계획입니다"

송 행장은 튼튼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고객서비스를 강화한다면 외국은행
이 몰려오고 국내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져도 1천2백만명의 기존고객이 국민
은행을 외면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수익성 위주로 나가더라도 "국민의 은행"이라는 이미지는 계속 유지하겠다"
는 것이 송 행장의 경영방침이다.

국민은행이 일반인들에겐 다소 보수적이고 느린 은행으로 비쳐지는게 부담
이라면 부담이다.

임원이나 부장급들도 다른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편이다.

최근에는 효율적인 의사결정체계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62년 무진회사가 통합돼 한국국민은행(국민은행의 전신)이란 간판을
달때부터 은행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한국국민은행의 행장이 송행장의 작은 아버지인 송재오씨.

제일은행 상무 등을 역임한 그는 송 행장이 은행원의 길을 선택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송 행장은 "합병은행의 초대행장이라는 점에선 작은 아버지와 내가 특이한
인연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37년간 국민은행의 산증인이 돼왔다.

조사부장, 종합기획부장, 국제부장 등을 두루 거쳤다.

까치 마스코트와 네잎클로버 뺏지로 기억되는 국민은행의 첫 CI(기업이미지
통합) 작업은 송 행장이 조사부장으로 있을때 주도적으로 진행한 일이다.

전남대 농과대 학장을 지낸 부친(송재철씨)의 영향 때문일까.

송 행장은 학문에 대한 열의가 남다르다.

그는 서울대, 고대, 연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4군데 대학에서 최고
경영자과정을 이수했다.

"2년에 한번은 머리속을 청소하겠다"는 결심에서였다.

그는 틈만나면 책을 가까이 한다.

행장실에 가면 표지에 "비망록"이라고 적힌 은행노트를 여러권 볼수 있다.

송 행장이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 남는 문구를 일일이 기록해 놓은 것이다.

그는 직원들에게 각자의 직업이 요구하는 도덕성을 강조한다.

은행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정직.

"은행원이 돈벌기를 목표로 한다면 빨리 그만두고 장사를 하라"고 말한다.

평생을 국민은행과 함께 걸어온 송 행장.

그의 남은 목표는 "국민은행을 명실상부한 우량은행으로 만드는 것"이다.

< 박성완 기자 psw@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