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홍익대학교 와우관 3층 후미진 구석에 자리잡은 "하이브룸".

12평 남짓한 공간에 컴퓨터 몇대와 허름한 탁자 의자등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오전 7시30분께.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들의 학생들이 가방을 둘러메고 하나둘씩 들어선다.

유광선 김태현 최원호 김건우(이상 전자전기제어공학과 93학번), 김성훈
(경영학과 94학번).

홍익대에 하나뿐인 대학생 벤처기업인 하이브(HIVe)의 기획운영위원회
멤버들이다.

하이브룸 공간안에서 그들은 회장 총무부장 홍보부장 개발팀장 감사부장이란
직함으로 불린다.

"5인방"이 다 모이자 "하이브 사업전략 회의"가 시작된다.

현재 진행중인 프로젝트의 진척상황을 점검하고 새로운 프로젝트의 사업성
등에 대해 치열한 논의를 벌인다.

오전 8시30분께.

앳된 티가 가시지 않은 젊은 후배들이 속속 얼굴을 내민다.

전 직원 12명 출근 완료.

회색 시멘트벽이 만들어내는 차가운 분위기는 "제2의 제리양"을 꿈꾸는
이들 젊은 대학생들이 발산하는 뜨거운 열기로 모두 가셔진다.

하이브는 인터넷 벤처기업이다.

하이브의 창업과정은 매우 독특하다.

지난해 9월.

홍익대 캠퍼스 곳곳에 "벤처비즈니스에 참여할 대학생들을 모집합니다"라는
공고문이 나붙었다.

그동안 대학가를 휩쓸던 벤처창업 열기의 무풍지대로 남아 있던 홍익대
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관심있던 20여명의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창설모임을 열어보니 "20인 20색".

벤처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이나 관심분야 특기등이 제각각이었다.

모임을 주도한 학생부터 "대학생 벤처회사를 한번 만들어보자"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구체적인 사업계획이나 방향 등이 있을리 없었다.

그러나 이들 모래알 같았던 벤처지망생들을 하나로 묶어놓은 것이 바로
"인터넷"이었다.

"밑천도 경험도 없이, 더구나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사업은 과연 무엇일까. 장시간 토론을 벌였죠. 만장일치로 나온 결론은
인터넷이었습니다. 사이버공간은 아이디어와 열정만 가지고도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새로운 무대라는데 모두 동의했습니다. 또 각자 갖고 있는 역량을
한데 모을 수 있는 유일한 분야이기도 했고요"(유광선 회장)

머리를 맞대고 하이브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각론에 들어가니 의견충돌이 없을 수 없었다.

절반 가량이 이런저런 이유로 그만뒀다.

남은 사람들만으로 어설프게나마 회사조직체제부터 갖췄다.

며칠 밤을 새워가며 두툼한 인터넷비즈니스 사업계획서를 완성했다.

"다양한 사업아이템들이 쏟아졌습니다. 결론은 "할 수 있는 것은 다해보자"
는 것이었죠. 다만 현실성있고 단기간에 수익을 낼만한 사업들을 먼저 추진
하기로 했죠"(최원호 홍보부장)

우선 사업계획서를 들고 대학 관계부서를 찾아가 끈질기게 설득해 사무실
공간과 LAN(구역내통신망) 등을 지원받았다.

집에서 각자 쓰던 PC와 여기저기서 얻은 책상과 의자등을 갖다 놓으니 제법
사무실 분위기가 났다.

그것이 투자의 전부였다.

하이브가 개발한 첫 상품은 인터넷에서 대화방 기능을 제공하는 웹프로그램
인 "하이브 카페".

한번 프로그램을 짜기 시작하면 밤을 새기 일쑤인 김건우 개발팀장의
작품이었다.

기존에 나와있던 비슷한 프로그램에 비해 소리기능 쪽지기능 등 새롭고
재미있는 기능 등이 추가돼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광고비나 마케팅 비용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이브가 택한 영업
무대도 역시 사이버공간.

인터넷과 PC통신의 게시판에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글들을 띄우는 것부터
시작했다.

지난 3월12일.

하이브의 멤버들에겐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길드"란 벤처기업으로부터 이 프로그램을 구입할 수 없겠느냐는 연락이
왔다.

그쪽에서 제시한 가격은 2백만원선.

기존 제품 가격에 비해 30~40% 낮은 수준이었지만 흔쾌히 받아들였다.

대학생 벤처를 설립한지 5개월여만에 첫 매출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스러웠습니다. 사업해서 돈벌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지요. 2백만원 전액을
현금으로 찾아 12등분해 미리 준비한 급여봉투에 넣고 한명 한명에게 나눠
줬습니다"(김태현 총무부장)

한달 용돈으로도 부족한 액수였지만 액면으로 따질 수 없는 소중한
돈이었다.

모두들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하이브 카페"는 국민회의의 "사이버 국회의사당"으로도 사용됐고
홍익대학교 인터넷 홈페이지의 대화방및 토론 세미나실로 이용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으로 지금까지 올린 매출은 1천5백여만원.

모두 개발비로 재투자했다.

하이브는 지난 5월13일 "마음과 마음"이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동영상이 돋보이는 이 사이트는 10~20대를 대상으로 대화방과 미팅방, 영화
정보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개설한지 보름도 안돼 하루 방문자수가 6천~7천명에 이를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배너광고도 곧 유치하게 돼 고정적인 수입을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 다양하고 참신한 서비스를 추가해 젊은이들의 놀이공간과 교류의
장으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하이브가 앞으로 선보일 아이템은 수두룩하다.

방송프로그램인 "사랑의 스튜디오"를 인터넷에 옮겨놓은 "러브 큐피트",
홈페이지를 방문한 사람수를 실시간으로 표시해 주는 "실시간 카운터",
웹브라우저 모양을 없애고 TV광고처럼 인터넷화면을 꾸미는 "ICF" 등.

"획기적인" 제품이라 도용될 우려가 있어 아직 공개할 수 없으나 곧 시제품
을 내놓을 "비장의 무기"도 있다.

하이브는 이들 제품 판매로 올해 5억원 이상의 매출을 거뜬히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야후가 별겁니까. 우리도 충분히 자신있습니다. 세계 시장을 품에 안을
겁니다"

하이브의 "열두명 전사"들은 꿈이 있기에, 그 꿈을 펼칠 인터넷이란 공간이
있기에 당당하고 행복한 모습들이었다.

< 송태형 기자 toughlb@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