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지도지침 제시, 강제적인 인원축소, 합병추진, 업무개선 명령
발동..."

일본의 금융감독청이 은행의 목줄을 쥐고 흔들어대고 있다.

자기자본비율(BIS기준) 규제와 공적자금 투입이라는 쌍칼을 내세워 강권을
행사하고 있다.

금융감독청이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부상한데는 나름대로의 까닭이 있다.

바로 "은행 불신"이라는 국민적 정서때문이다.

은행의 이미지는 바닥에 떨어진지 오래다.

"버블을 일으킨 장본인" "부실책임은 지지않고 고액연봉을 즐기는 무리"...

이같은 국민적 분노를 배경으로 금융업계에 채찍을 휘둘러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금융감독청의 움직임은 주권자인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으로서 정당한
권력행사라는 일면이 있다.

상황논리상 어느정도 설득력을 갖고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는 홋카이도다쿠쇼쿠은행이 파산을 맞았을 때 뒤처리를 시장에
맡겼었다.

야마이치증권 등의 파산때도 마찬가지였다.

대장성 관계자는 "시장에서 일어난 일을 시장에 맡기는 것은 빅뱅을 위해서
도 바람직하다"며 시장에 대한 신뢰를 강조했다.

그러나 시장논리로는 금융위기를 타개할 수 없었다.

오히려 금융불안을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불러오고 말았다.

예금인출로 은행이 위기에 몰리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대장성은 서둘러 진화작업에 나섰다.

초점은 "시장주의를 어떻게 수정할 것인가"에 맞춰졌다.

지난해 10월 마침내 금융 조기건전화법을 만들어냈다.

시장판단을 기다리지 않고 감독청이 미리 금융기관에 손을 쓰도록 했다.

종전의 관료주도형 시스템으로 되돌아가고 만 것이다.

간섭의 강도는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은행에 경영건전화 계획을 제출토록 요구했다.

미쓰이신탁과 주오신탁에 대해서는 공적자금 투입을 무기로 조기합병을
요구하기도 했다.

감독청이 금융업계의 밑그림을 다시 그리고 나선 것이다.

문제는 관료주도형 행정의 부활이 과연 바람직하냐는 점이다.

붕괴직전의 금융시스템 회복을 위해 강권행정의 필요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행정으로 금융이 회복될지는 의문이다.

감독청의 건정성확보 요구는 은행의 대출기능을 억제할 수밖에 없다.

금융붕괴의 원인으로 작용한 통제행정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명분이 약하고
시대흐름을 거스르는 행위다.

금융감독청은 시장의 감시를 받는 감독관리의 큰 틀을 다시 짜야 할때다.

< 도쿄=김경식 특파원 kimks@dc4.so-net.ne.jp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