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초발심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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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차라리 계율를 지키고 하루를 살 지언정 계를 깨뜨리고 백년을 살기를
원치 않는다"
신라의 자장율사는 선덕영왕이 재상에 취임하지 않으면 목을 베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이 "삼국유사"의 기록은 신라불교가 얼마나 계율을 중시했가를 알려주고
있다.
자장율사는 일정한 법도가 없던 신라불교의 기강을 확립시킨 인물이다.
당시 불교의 최고위직인 대국통에 오른 그는 승풍을 진작시키기 위해 전국의
승려들에게 불경을 공부하게 하고 매달 두번씩 신도들에게
계율을 해설하도록 의무화시켰다.
그리고 매년 봄 가을 시험을 보았고 "포살"이라는 의식을 거행해 계율을
범한 죄를 참회하도록 했다.
승려들이 58조목이나 되는 보살계를 하나씩 읽어가면서 참회한뒤 "나는
청정하다"고 세번씩 다짐했다고 한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조계종에 전승돼오고 있는 포살의식이다.
조계종에서는 지난 11일 취임한 혜암 종정의 "계율을 엄중하게 지켜
청정하게 살라(지계청정)"는 고시에 따라 "초발심 회복운동"이 활발하게 진행
되고 있다.
지난해말 고질적인 종권싸움이 폭력으로까지 이어져 실추된 종단의 위상과
오래전부터 실종된 승려의 수행풍토를 치유하겠다는 최후의 자가처방인
셈이다.
처음 불문에 들어가려고 결심했을 때의 "초발심"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자는 것이다.
한국불교의 개혁은 허술한 불교 연대화운동이나 중생제도만 앞세우는
참여운동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고 오로지 계율을 지켜가는 신앙심에서 다시
시작돼야겠다는 반성에서 시작돼 과거보다는 훨씬 참신한 느낌을 준다.
각 사찰에서는 스님들이 일상 지켜야 할 청규를 세우는 일에 바쁘다.
지난 15일에는 3백여명의 신도가 부산역광장에서 장장 9시간동안
종단상처치유를 기원하는 3천배 참회의식도 가졌다.
승직제도개선을 위한 종단차원의 연구도 그가운데 하나다.
"초발심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불가에서만 통하는 말이 아니다.
"처음엔 착하지 않은 이는 없으나 끝내 착한 이는 드물다"는 유가의 말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오늘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모두 한번쯤 화두로 삼아본다면 더 뜻깊은
하루가 되지않을까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2일자 ).
원치 않는다"
신라의 자장율사는 선덕영왕이 재상에 취임하지 않으면 목을 베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이 "삼국유사"의 기록은 신라불교가 얼마나 계율을 중시했가를 알려주고
있다.
자장율사는 일정한 법도가 없던 신라불교의 기강을 확립시킨 인물이다.
당시 불교의 최고위직인 대국통에 오른 그는 승풍을 진작시키기 위해 전국의
승려들에게 불경을 공부하게 하고 매달 두번씩 신도들에게
계율을 해설하도록 의무화시켰다.
그리고 매년 봄 가을 시험을 보았고 "포살"이라는 의식을 거행해 계율을
범한 죄를 참회하도록 했다.
승려들이 58조목이나 되는 보살계를 하나씩 읽어가면서 참회한뒤 "나는
청정하다"고 세번씩 다짐했다고 한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조계종에 전승돼오고 있는 포살의식이다.
조계종에서는 지난 11일 취임한 혜암 종정의 "계율을 엄중하게 지켜
청정하게 살라(지계청정)"는 고시에 따라 "초발심 회복운동"이 활발하게 진행
되고 있다.
지난해말 고질적인 종권싸움이 폭력으로까지 이어져 실추된 종단의 위상과
오래전부터 실종된 승려의 수행풍토를 치유하겠다는 최후의 자가처방인
셈이다.
처음 불문에 들어가려고 결심했을 때의 "초발심"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자는 것이다.
한국불교의 개혁은 허술한 불교 연대화운동이나 중생제도만 앞세우는
참여운동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고 오로지 계율을 지켜가는 신앙심에서 다시
시작돼야겠다는 반성에서 시작돼 과거보다는 훨씬 참신한 느낌을 준다.
각 사찰에서는 스님들이 일상 지켜야 할 청규를 세우는 일에 바쁘다.
지난 15일에는 3백여명의 신도가 부산역광장에서 장장 9시간동안
종단상처치유를 기원하는 3천배 참회의식도 가졌다.
승직제도개선을 위한 종단차원의 연구도 그가운데 하나다.
"초발심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불가에서만 통하는 말이 아니다.
"처음엔 착하지 않은 이는 없으나 끝내 착한 이는 드물다"는 유가의 말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오늘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모두 한번쯤 화두로 삼아본다면 더 뜻깊은
하루가 되지않을까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