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철 <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 재무부장 >

사월이라 초파일, 부처님 오신날!

서울시청 앞에 설치된 장엄한 연꽃은 피어서 오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경건케 하고, 그 넓은 잎새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꽃은 다시 빛으로
태어나 무명에 갇혀 사는 중생의 어둠을 밝히고 있다.

어둠의 길을 밝히고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지 어언 2600여 년이 지난 오늘, 서울
세종로에서 안국동까지 아니 광주의 금남로에서 망월동까지 곳곳의 대로변에
그 분이 오셨음을 기리는 연등 축제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컴컴한 지하철 속에 갇혀 신음하던 생존권이 오늘은 거리로 쫓겨나와
방황을 하고, 인도양에서 일어났던 현대 상선과 북한 선박의 충돌로 인한
보상불만을 금강산 관광호인 풍악호의 입항 거부로 상식과 국제관례를
무시한채 속된 욕심을 드러내는 그들과 함께 하는 이 혼란속의 우리에게
과연 부처님 오심은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옛날 부처님 오시는 길목의 한 켠에 가난한 여인 난다가 동전 두 닢으로
산 초라한 등불처럼 밤이 깊어가고 거센 바람이 불어도 그 바람에 꺼지지
않는 공덕의 등불을 오늘은 누가 후미진 골목을 찾아 그곳에 무심으로 달아
놓을 이 있겠는가.

욕심 없이 어두운 길만을 밝혀 줄 이 그 누구 있겠는가.

목전의 이권에 눈멀고 귀 먹은 이들을 향해 사자후로 하늘과 땅 사이에
홀로 존귀한 생명 사상을 외치며 걸음걸음 연꽃을 지려 밟고 이 땅에 오신
부처님.

그 분을 옳게 맞는 일은 바른 길을 택하여 삶을 거듭거듭 개선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일.

아무리 밀레니엄 시대를 외치며 새 시대의 고급스런 이론을 배우고 이야기
한다 할지라도 삶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별 의미가 없다.

"우리의 눈을 열고, 지혜를 일으키고, 깨달음과 진리에 이르는 길을 찾아야
한다. 부처님에 의하여 잘 말해진 법은 현생적이고, 즉시적인 것이다. 눈이
있는 자는 와서 보라고 했듯이 가르침이 삶을 열반의 길로 인도함으로서
지혜로운 자는 스스로 알아 차릴 수 있다"고 제자들은 그 가르침을 회상하고
있다.

이와같이 부처님은 관념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떠나 우리의 눈앞에
당면하고 있는 현상 그 자체의 삶이 소중한 것임을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까이하면 우리들 자신은 그 빛 안에 살게 되고, 그
가르침은 삶의 지표가 된다.

우리는 곧잘 인생을 나그네에 비유를 한다.

한평생을 지내다 보면 예측할 수 없는 많은 일들에 부딪힌다.

그리하여 때로는 좌절하고 절망하고 혹은 탐하고 성내고 싸우고 울고
웃는다.

이러한 삶의 도정에서 새로운 눈을 뜨고 지혜를 일으키고 올바른 길을 걸어
마침내 자유의 경지에 이르도록 가르치는 것이 부처님의 참 뜻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후에 최초로 어떠한 법문을 했느냐
하는 것은 부처님의 참 뜻이 어디에 있느냐를 아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부처님은 녹야원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다음과 같이 법문을 한다.

수행자들이여, 진리를 구현하려는 자는 양극단을 가까이 해서는 안된다.

하나는 욕망에 탐착하는 것으로 그것은 저열하고 비천한 범부의 소행이다.

또다른 하나는 지나친 고행을 하는 것으로 그것은 다만 스스로를 괴롭힐 뿐
현명한 사람의 할 바가 아니다.

나는 이 두 개의 극단을 버림으로서 중도의 바른 길을 깨달았다.

그것은 눈을 열고 지혜를 일으키고 깨달음과 열반에 이르는 길이 되었다.

이것은 석가모니 부처님 자신이 체험한 것이다.

한 왕국의 태자로 태어나 세속적 쾌락을 누려보았고, 출가를 해서는 남들이
흉내 낼 수조차 없는 고행을 했던 부처님이 깨달은 것은 이 양 극단을 버린
중도의 바른 길이었다.

바르게 사물을 바라보고, 바르게 생각하며, 바르게 이야기하고, 바르게
행하며, 바르게 살고, 바르게 정진함으로서 바르게 마음을 닦아 참으로
마음이 안정되는 여덟 가지의 바른 길(팔정도)이 그것이다.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하는 우리들이 여덟 가지 바른 정신을 일상에 구현할
때 삶은 아름답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편벽 되고 치우치지 않은 올바른 길인지를 반성
해야 한다.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하루 한 때라도 조용히 그 어떤
편견에도 사로잡히지 말고, 순수하게 발가벗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그래야 자기 정신을, 맑은 정신을 지닐 수가 있다.

이때에 비로소 하루하루 사는 일이 새로워진다.

이와 같이 되살피는 일이 없다면 부처님 오신날을 늘 맞이한다고 해도
아무런 득이 되질 않는다.

부처님 오신날을 기리는 것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그 가르침을 비추어
보자는 것.

과연 내가 이웃과 더불어 그렇게 살고 있는가.

그런 정신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가.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