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의 머리속에 떠오르는 코뿔소는 육중한 몸통으로 사물이나
물체를 향해 앞만 보고 돌진하는 마치 폭군과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이는 생존을 위해 후천적으로 형성된 습성이다.

원래 코뿔소는 체구에 비해 눈이 작고 겁이 많아 투쟁과 공격보다는 양보가
천성으로 배어 있는 짐승이다.

사람이나 맹수의 공격이 없는 한 만사를 느긋하고 평화적으로 해결하며
생활하는 습성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습성이 바뀌게 된 것은 코뿔소의 뿔이 열병의 특효약이라고
알려지면서부터다.

동양의 한방의학에서는 불치병을 치유하는 신비한 코뿔소의 뿔을 "서각"
이라 하여 금값의 4-5배의 가치를 두고 있다.

이 때문에 원주민과 사냥꾼들은 코뿔소가 보이기만 하면 무조건 살생부터
하여 뿔을 획득했다.

코뿔소가 인기척에 민감하고 눈앞의 사람이나 짐승을 뿔로 받아 죽여
버리려는 괴팍하고 저돌적인 습성을 키워 나가게 된 것은 바로 이 때문
이었다.

코뿔소는 시력이 약하기 때문에 나팔처럼 생긴 귀와 말코처럼 벌려진 콧구멍
에 의존한다.

즉 청각과 후각으로 만사를 해결해 나간다.

코뿔소의 의사소통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먼저 머리를 어깨높이로 쳐들고 전진하는 것은 평화롭게 먹이를 찾아 이동
하고 있다는 표현이다.

머리를 상하로 급하게 움직이면 주위에 맹수나 수상한 물체를 발견했다는
신호이다.

선두주자가 갑자기 정지한 후 방향을 바꾸면 적군이 있으니 긴급히 대피
하라는 뜻이다.

앞발을 이용해서 의사를 전달하기도 한다.

앞발을 약간 꿇고 머리로 땅을 "퉁" 치면 최후의 집단 공격을 명령하는
신호이다.

꼬리 끝을 일직선으로 펴거나 털을 좌우로 흔들면 만사가 끝났다는 자유시간
을 의미한다.

한편 코뿔소는 배변물로 자신의 영역을 표시한다.

한가롭게 가족끼리 지낼 때는 똥이나 오줌을 눠 영역권을 행사한 후 확인
도장을 찍기라도 하듯 넙적한 주둥이로 꼭 눌러놓는다.

행군을 시도할 때는 암컷과 수컷이 무리 전체를 한바퀴 순회하여 점검한 후
이상이 없으면 새끼부터 물을 먹이고 진흙목욕을 시킨다.

식사 후에는 그늘진 나무숲 속을 찾아가 온 무리가 깊은 잠을 즐긴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후 기분이 좋으면 집터만한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자주
한다.

자연계에서 코뿔소의 수명은 40년이다.

< 서울대 수의학과 초빙교수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