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소속 투신사들이 계열사를 편법 지원하는 것을 막겠다는 금융당국과
공정거래위원회의 방침은 일견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고객들이 맡긴 신탁재
산으로 계열사의 자금조달을 지원하거나 심지어 주가를 조작하는데 쓴다면
이는 심각하게 우려할 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나친 행정규제가 자칫 투신사의 자산운용을 제약하고 결과적으로
합리적인 가격 움직임을 왜곡시킬 것이라는데 이르면 당국의 이번 방침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는 점도 동시에 지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당국은
계열사 주식보유 한도를 현재의 종목당 10%에서 5%로 낮추는 등의 방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이런 식의 규제가 과연 정당한
것인가 하는데는 의문의 여지도 적지 않다.

문제가 되고 있는 현대투신의 바이코리아 펀드의 경우 약 5조원에 이르는
자산중 계열사 주식편입비율은 5.7%로 종목당 한도 10%를 크게 밑돌고 있다.
현대그룹의 싯가총액이 전체 시장의 9%에 육박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현대
투신은 계열사 주식을 오히려 적게 갖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계열사 주식을
한도까지 보유하고 있는 삼성투신은 당국자들도 인정하듯이 그룹사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보유비율이 높아진 것에 불과하다. 만일 삼성그룹의 주가가
더 오른다면 삼성투신의 펀드매니저들은 주가 전망에 관계없이 유망한 주식을
처분해야 하는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대기업 투신사에 돈이 집중된다는 당국의 우려 또한 "영업할 권리"를 위협
하는 잘못된 발언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투신의 경우 경영
진들이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 바이코리아등을 앞장서 개발해왔고 투자자와
증권시장이 이에대해 적극적인 찬성표를 던지고 있을 뿐이다. 정부가 특정
투신의 수탁고 증가에 불만을 표시한다면 이는 "누구도 우월해서는 안된다"는
하향 평준화 논리와 다를 바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대기업 투신사들의
비대화가 경제력 집중등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
이다. 그러나 이런 부작용은 정부가 주인없는 투신사들을 자신의 시장대리인
처럼 이용했기 때문에 빚어진 그동안의 숱한 문제보다는 덜 심각할 것이라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투신 규제론이 불거진 시점도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불공정거래 규제는
일상적인 감독 활동으로 이뤄져야하는 것일 뿐 주가를 관리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곤란하다. 당국이 기관투자가를 통제하는 낡은 방법으로 주가
관리에 나선다면 이는 통상적인 감독 범위를 넘어섰다고 할 것이다. 투신사에
대한 규제는 한도설정등 총량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자산운용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내부 감독체제를 갖추도록
하고 신탁재산과 고유재산 사이에 방화벽(fire wall)을 강화하도록 유도하는
등 보다 질적인 감독활동이 요망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