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 <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 / 미 아메리카대 초빙교수 >

세계 각국의 정치와 경제를 보는 워싱턴의 시각은 비교적 정확하다.

그리고 한국경제동향에 대한 워싱턴 언론의 시선은 매우 날카롭다.

이곳 유력한 신문들은 최근 사설을 통하여 한국경제의 빠른 회복을 크게
보도했다.

갑작스런 외환고갈로 국가부도의 위기를 맞은지 1년도 채 못돼 한국이
IMF에 구제금융의 일부를 상환한다는 소식은 서방 언론인들에게 매우
경이로운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과연 한국이 짧은 기간내에 80년대 후반의 경제활력을 다시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 특히 기업의 구조조정 방법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다.

정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정부개혁에 대해서는 차라리 비관적이다.

구조조정에 관한한 대체로 어느나라에서든 조기에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눈에 보이는 제도와 기구를 고치는 것도 어렵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구태연한 생각과 관습을 고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지난 1년간 우리나라 기업과 금융기관은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엄청난 내부
변화를 경험했다.

이로 인해 우리 경제는 지금 심각한 대량 실업사태를 맞고 있다.

그런데 막상 우리나라에서 일찌부터 했어야 하는 구조조정은 정부부문
이었다.

IMF 사태가 발발하기 훨씬 이전부터 국제 평가기관들은 정부생산성에 있어
우리나라가 최하위 수준에 있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발표하였다.

그런데도 과거 정부는 그에 대해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정부무능은 정부기구와 제도의 모순성에도 기인하지만 관료무능에서도
비롯된다.

관료의 경직성과 안이한 태도는 어느나라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그 정도가 크게 지나쳤다.

역대 정부와는 달리 현재 김대중 정부는 공직 인사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공무원 임용정책에 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3급이상 고위직을 개방하여 해당분야의 전문가를 대거 발탁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데 일단 이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될 만하다.

고위공직 개방에 부응해 최근 한국은행은 부장직을 개방하여 능력있는
외부인사를 임용하겠다고 하였는대 이것도 과거 정부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신선한 개혁조치로 받아들여질 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조치들은 일단은 환영하면서도 이에 대해 짚고 넘어갈
몇가지 사항이 있음을 느낀다.

공직개방은 정부내 관련부서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특히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부서로부터의 반발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만일 어설픈 인사개혁을 단행하면 다음 정권이 들어서기도 전에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공직의 완전개방을 조기에 매듭짓는 일은 많은 부작용을 낳는다.

만일 공직의 완전개방을 실시하면 개방의 기준을 설정하는데 임의성이
게재되기도 하지만 기존의 국가고시제도의 고유한 순기능마저 붕괴될 수
있다.

따라서 공직개방은 차별적으로 단계적으로 할 것이 요구된다.

공직개방은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고위직과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중위직으로 한정해야 한다.

그리고 직업관료들은 정책을 집행하는 자리에만 배치함이 바람직하다.

직업관료들은 어려운 국가고시를 통과한 후 관료조직내에서 줄곧 명령대로
움직이도록 훈련받은 자들이다.

그래서 지금처럼 치열한 국제경쟁과 변화하는 대외적 환경에 신축적으로
대응하는 정책을 구상하는데에는 이들 직업관료들은 비교우위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중요한 국가정책결정에 참여하는 국장이나 차관보 이상의
자리는 외부인사로 채워지도록 법제화되어 있다.

이때 외부인사는 보통인물의 학자 출신이 아니라 이론과 실무면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은 자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정권이 바뀌면 유감없이 다시 학계로 돌아간다.

우리도 이러한 선진국형 관료제도를 하루속히 도입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신뢰성을 유지할 수 있으며 냉엄한 국제경제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선진국도 고위관료직에 관한한 최고실력자로 무장하고 세계경쟁에 임한다.

외부인사 채용에 있어 오직 실력제일주의가 아니라 예전처럼 학연 지연
정치인연 등으로 관료직을 채우면 그 결과는 개혁이전보다 더 못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우리나라 외채는 지금 2천억달러에 달한다.

1년 이자만 갚기 위해서도 우리는 연간 1백50억달러 이상 무역흑자를 내야
한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의 정책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특히 인사정책이 그러하다.

우리는 더이상 실패를 허용할 여유가 없다.

효과적인 관료개혁이 없이는 우리나라 구조조정은 결코 완성될 수 없다.

따라서 경제활력의 회복도 기대할 수 없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