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명 : ''사람의 역사''
저자 : 아서 니호프
역자 : 남경태
출판사 : 푸른숲
가격 : 전2권/각권 9,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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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4백86만4천3백28년 전 어느날, 몸집이 작고 벌거벗은 한
인간이 얼룩말 시체 옆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그는 달려드는 파리를
쫓으면서 얼룩말의 오른쪽 뒷다리 고기조작을 떼어냈다"(선사시대)

"월터 랜싱은 합성물질로 된 안락의자에 앉아 아름다운 여자 목소리의
외계인 모마와 대화를 나눈다. 모마는 은하계에서 많은 행성을 만났으며
대부분 생명체의 종류는 비슷했다고 전해준다"(미래시대)

5백만년에 걸친 인간의 삶을 소설처럼 재미있게 설명한 아서 니호프의
"사람의 역사"(남경태 역, 전2권, 푸른숲 각권9천원)가 출간됐다.

선사시대부터 우주시대까지를 관통하는 인류학 연구서다.

이 책은 정치적 사건이나 전쟁 등이 중시되기 마련인 일반 역사서와 달리
인간이 환경을 어떻게 이용해 삶을 전개해왔느냐에 초점을 맞춘다.

각 시대의 일상적인 생활방식을 무대 위에 재현하고 그 속에서 역사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이 책의 주인공은 지배자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산 보통 사람들이다.

저자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광범위한 인간의 역사를 훑어나간다.

5백만년 전에서 미래의 시대상까지 꿰뚫어 과거 현재 미래를 동일선상에
놓는다.

문학적 상상력까지 맘껏 발휘해 흥미를 더해준다.

책의 구성도 어느 한 순간의 역사적 단면을 묘사한 뒤 학생들과의 토론을
통해 의미를 정리하는 형식으로 돼있다.

책갈피를 넘기다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엄청난 이야기를 편년체로 다룰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저자는 주요 테마 12개를 징검다리 삼아 인류사의 넓은 강물을 건너는
방식을 취했다.

인류발생과 근거지 확대(1,2장), 현생 인류의 출현(3장),농 업혁명(4장),
도시혁명(5장), 서구의 세계정복과 기독교 전파(6,7장), 과학혁명(8장),
산업혁명(9장), 인류의 두 위기인 인구와 환경문제(10,11장), 미래예측(12장)
등이 그것이다.

역사학 용어로 보자면 1~5장이 선사시대, 6~11장은 역사시대에 속한다.

저자는 시종일관 "중심주의" 사고를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류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인 "문화"란 서열을 매길 수 없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아프리카보다 경제적으로 진보했지만 미국 음악이 아프리카 음악보다
낫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는 남성중심, 자민족중심, 나아가 인간중심주의까지 비판대상에 올린다.

특히 19세기 이후 서구문화가 자민족중심주의를 강하게 내세우며 그 우수성
을 입증하려 했지만 5백년 남짓한 서구의 문명적 우세도 점차 기울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의 중심주의에 대한 거부반응은 "서구인들이 콜럼버스의 발견을 기념
하지만 그는 서구의 자민족중심주의적 문화를 확산시키고 매우 독선적 종교인
기독교와 매우 착취적 기술을 전파한 인물일 뿐"이라는 대목에서 잘
나타난다.

그는 최초의 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부터 불을 이용한 호모 에렉투스,
동굴벽화를 남긴 호모 사피엔스를 주의깊게 살피면서 인간이 동물을 사육하고
노예를 부리기 시작하면서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고 분석한다.

영토를 갖고 싶다는 단순한 욕구가 재산축적의 수단으로 작용했다는 진단도
곁들였다.

토지는 곧 부를 뜻하고 가축은 재산이 됐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그는 욕망의 근원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그가 인간의 역사에서 "동식물의 사육" 다음으로 "정복"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바로 이 "욕망"이다.

그는 또 인류 진화사를 한마디로 기술진보라고 요약하면서 진보는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기술혁신의 부작용이 심하다면 이를 변형하거나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류학과 사회학 역사학 공상과학이 결합된 이 책은 저자의 바람대로
"크로스 오버(경계를 넘나드는)"의 미덕을 갖춘 인류사의 종합보고서로
평가받을 만하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