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단지인 서울 양재동 포이동 일대 "포이 밸리"에 최근 낯선 이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10여개 벤처기업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이것 저것 캐물었다.

사업은 잘 되느냐, 애로사항은 없느냐, 정부에 대한 불만은 무엇이냐...

혹시 경쟁국에서 고용한 산업스파이들이 아닌 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 편"이었다.

바로 국가정보원 소속 요원들이었다.

국가의 미래를 짊어진 벤처사업가들이 의욕적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는지,
매일 외쳐대는 정부의 벤처기업 지원시책은 실효를 거두고 있는지, 더
도와줄 것은 없는지를 점검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사찰"이 아니라 말 그대로의 "조사"였다.

젊은 벤처기업가들이 눈을 씻고 명함을 다시 들여다 볼 정도였다.

국가정보원이 이렇게 달라지고 있다.

비리추적이나 정치사찰 같은 음습한 용어를 벗어던지자는 노력의 산물이다.

"경제정보원"으로 거듭나겠다는 환골탈태의 시도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2월 출범과 함께 경제.산업정보 수집에 최우선을
두겠다고 선언했었다.

"정권 바뀔 때마다 나오는 소리"쯤으로 들린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정치계나 관료사회 등에선 어떤지 모르겠지만 경제현장에선 분명
하게 다른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적어도 경제 쪽에선 환연한 변화가 있다는 얘기들이다.

국정원은 지난 2월 인터넷 홈페이지(www.nis.go.kr)를 게설했다.

이곳에 들어가면 국제경제 동향, 국제경제 관련행사, 개도국 개발사업
정보, 중국투자 가이드 등 해외경제정보가 망라돼 있다.

해외에 파견된 요원들이 적어도 이런 정보를 수집하느라 애쓴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세계경제의 흐름을 이해할수 있는 자체 정책보고서도 일반에게 개방하고
있다.

지난 2월 국정원은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미국 월스트리트를 다룬 "월가의
큰 손들"과 "아시아 3개국 금융위기 어떻게 극복하고 있나"라는 책을 냈다.

지난 8일에는 중남미지역의 주요정세와 경제동향을 분석한 "98년 중남미
정치.경제 리포트"를 발간, 정부부처와 민간기관에 나눠줬다.

기업이나 투자가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세일즈"하겠다는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국정원은 이미 대외활동의 무게중심을 경제로 옮기겠다며 내부조직 개편을
마쳐 놓은 상태다.

산하 3개 연구소중 국제문제조사연구소를 국제경제조사연구소로 바꿨다.

민간 경제연구단체장을 이곳의 책임자로 영입했다.

금융및 재정 분야의 전문 인력 20여명을 보강하기도 했다.

국내 경제부분에 대한 접근방향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종전엔 기업주의 처신이나 품행, 인사와 관련된 잡음, 정치권과의 관계
등을 "감시"하는게 주요 임무였다.

요즘은 투자동향, 경쟁기업과의 관계 변화, 경제정책에 대한 반응 등이
주요 조사사항이라고 한다.

국가정보원의 환재홍 공보관은 "국정원의 부훈을 "정보는 국력이다"라고
바꾼 취지를 이해하면 변화의 방향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작년 한햇동안 행정기관과 민간기업체 등에 22만5천여건의 각종 자료를
지원했고 앞으로도 수집된 경제정보를 기업 등에게 제공하는 활동을 대폭
확대할 방침이라고 강조한다.

< 오광진 기자 kjo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