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었던 대지 위에 푸릇푸릇 새싹이 돋아 난다.

산과 들엔 여기저기 꽃이 피어난다.

하지만 회색 콘크리트 속에서 살아가는 도시의 직장인들은 봄을 피부로
느끼기 쉽지 않다.

기껏해야 여인들의 옷차림을 통해서나 봄이 온다는 것을 알게 될 뿐-.

그러나 한국토지공사 꽃꽂이 동아리 "자연회" 회원들에게서는 언제나
꽃향기가 폴폴 넘친다.

꽃은 아름답다.

그 꽃을 예술작품으로 다듬는 회원들의 마음은 더욱 향기롭기 때문이다.

계절따라 피는 서로 다른 꽃들을 부드러운 손길로 다듬어 조화를 이루어내는
솜씨는 상당한 수준을 자랑한다.

꽃꽂이 강사 자격증을 가진 회원이 10여명에 이른다.

"자연회"는 18년전 꽃에 관심있는 직원들 몇몇이 모여 자연스럽게
활동하다가 지난 91년 동아리로 정식 등록했다.

본사에만 30여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 5층 동아리방에서 최진옥 강사의 지도아래 꽃꽂이를
한다.

그런데 "삼매경"에 빠져 점심을 굶기 일쑤다.

이렇게 "배곯아 가며" 완성한 꽃꽂이 작품들은 삭막하기 쉬운 사무실
분위기를 화사하게 만든다.

쾌적한 근로환경은 생산성을 높이는데 한몫 하게 된다고 자부한다.

자연회 회원들은 앞으로도 이같이 직장 분위기 개선에 힘 쓰는 한편 행사도
열어 얻어진 수익금은 불우이웃 돕는데 쓸 계획이다.

자연회에서는 1년에 한번 "토우제 행사(창사기념행사)"에 맞춰 전시회를
갖는다.

그런데 한번은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회원중 한명이 밤샘작업하며 등공예 장식용 틀을 눕혀 개나리를 꽂아
두었는데 다음날 출근해 보니 작품이 바로 서있는 것이었다.

꽃꽂이에 대해 문외한인 어느 직원이 넘어진 줄 알고 친절을 발휘해 작품을
바로 세워 놓았던 것이다.

이런 일이 한두번 아니다.

그렇다고 지키고 서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회원들은 머리를 맞대고 묘안을 찾아냈다.

작품 앞에 "눕힌 그대로 놓아 두세요"라는 팻말을 세운 것이다.

아뭏든 난해한 그 꽃꽂이 덕에 관람객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참을 서서
본다.

작품명은 "눕힌 그대로 놓아 두세요"다.

한 부장은 "남자가, 그것도 부장이나 되는 분이 무슨 꽃꽂이냐"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답한다.

"내가 꽃꽂이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내가 진정한 남자이기 때문"이라고.

강한자 만이 진정 부드러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멋진 일침이 아닐
수 없다.

정수미 < 한국토지공사 자연회 총무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