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LG트윈빌딩 동관 28층 법률고문사무실.

이곳에선 한강이 흐르는 서울의 절반이 내려다 보인다.

그러나 이 사무실의 주인인 김동인 변호사(51)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세계는
지구 전체다.

구체적으론 LG계열사들이 진출해 있는 나라 모두가 그의 관심대상이다.

김 변호사의 "비행" 이력은 이를 잘 설명한다.

그는 대한항공의 밀리언 마일러.

한달에 한번꼴로 해외출장에 나서는 그는 얼마전 1백30만 마일의 마일리지
를 끊었다.

지구를 52바퀴 돈 셈이다.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업무가 가능한 것은 그가 미국에서 변호사자격을
취득한 국제변호사이기 때문이다.

미국변호사라고 특별한 혜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글로벌 스탠더드가
되다시피한 미국법을 잘 이해하고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점이 큰
도움을 준다.

김 변호사의 일은 LG가 벌이는 국내외 모든 사업에 대해 법률적 검토와
조언을 하는 것.

이른바 기업변호사이다.

7명의 후배변호사들과 함께 그룹의 각종 계약서작성에서 소송, 해외프로젝트
등 참여하지 않는 일이 거의 없다.

기업이 맺는 계약은 조항마다 모두 돈과 관계되므로 변호사가 함께 해야
가능한 유리한 조건을 끌어낼수 있다는 구본무회장의 의지가 크게 배어 있다.

김 변호사는 그래서 LG의 전자 화학 정보통신 반도체 등 굵직한 계열
기업의 법률고문을 모두 겸하고 있다.

김 변호사의 진가는 지난해 세계 최대 통신회사인 BT(브리티시텔레콤)의
자본을 유치하는데서 유감없이 드러났다.

IMF체제로 자금사정이 어려워진 LG텔레콤이 외자유치를 결정하자 김
변호사는 실무팀과 함께 런던으로 날아갔다.

3~4개월간 벌어진 밀고 당기는 싸움은 쉽지 않았다.

양쪽이 제시한 조건이 너무 차이났다.

BT는 주당 가격을 1만2천~3천원으로 제시했다.

LG측 생각하고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러나 계약조항을 하나씩 검토하며 LG측에서도 배울 것이 있는 재무와
마케팅 쪽에서 일부 양보하고 가격을 1만7천원으로 올렸다.

국가적으로 달러 한푼이 아쉬울때 3억7천만달러 도입이라는 외자유치 성공
사례는 그렇게 결정됐다.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 진출해 있는 BT가 경영권을 갖지 않고 지분을
출자한 첫 케이스라는 점에서 국제적인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 변호사의 변호사경력은 그렇게 긴 편이 아니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온 그의 첫 직장은 LG정유.

직장생활에 권태를 느낀 30대중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86년 조지워싱턴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40 가까운 나이에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늦깎이 변호사였지만 당시까진 한국인 미국변호사가 많지 않았다.

윤호일(우방합동) 전성철(김&장) 변호사 등과 함께 한국인 미국변호사
1세대로 분류될 정도다.

미국에서의 변호사생활은 힘들었다.

미국은 변호사가 국민 3백명당 1명씩 있는 나라다.

우리나라의 3천명당 1명과는 비교가 안된다.

그런만큼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법조인으로서의 권위보다는 서비스의식이 앞서는 사회인 만큼 치열한 노력
없이는 살아남기 힘들다.

처음 들어간 뉴욕 법률회사 휘트만&랜솜에서의 4년간 그의 출근시간은
회사업무의 시작시간이었다.

매일 밤늦게 일했고 주말도 제대로 챙겨본 적이 없다.

"그땐 골프의 "골"자도 몰랐을 정도"였다.

두번째 취직한 도노반 레져에서의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경쟁을 겪고 나서야 책임자급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당시만해도 미국의 한국변호사들은 나름대로 신바람이 났었다.

한국기업들의 미국 진출이 두드러질 때여서 할 일도 많았고 그에 걸맞는
대접도 받았다.

미국 회사 소속이었지만 한국담당인 만큼 LG전자의 TV가 미국 무역당국으로
부터 덤핑 판정을 받았을때 이를 무효화시키는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즈음 "미국에서의 변호사생활은 결국 미국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결국 94년 다시 LG의 품으로 돌아왔다.

"지금 하는 일이 천직 같다"는 김 변호사는 "기업변호사는 예방적기능이
강한 만큼 철저한 검토와 회사일을 내일처럼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일반 법률회사와는 달리 회사의 업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꿰뚫고
있어야 하는 것도 기본이라고 말한다.

지금 그가 듣는 평이 그렇듯이...

< 육동인 기자 dongin@ >

[ 특별취재팀 = 최필규 산업1부장(팀장)/
김정호 채자영 강현철 노혜령 이익원 권영설 윤성민
(산업1부) 김문권 류성 이심기(사회1부)
육동인 김태철(사회2부)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