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노트] (20세기를 이끈 경제학자들) (9) 새뮤얼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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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두는 기계가 있었는데, 이 기계는 어떤 상대도 물리쳐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기계 속에 사람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와튼(Wharton)의 계량경제모델 속에서 결국에는 로렌스 클라인
(Lawrens Klein)을 발견한다면 역설적일 것이다"
< 새뮤얼슨의 "황금시대의 경제학:개인적 회고" 중에서 >
-----------------------------------------------------------------------
새뮤얼슨은 최근 자신의 정책 신조와 연구 방식을 설명하면서, 희생자를
편들고 불평등을 혐오하는 것이 자신의 이데올로기라고 말했다.
효율과 평등이 맞서면 평등에 비중을 두고, 기업의 자유보다는 실업을 더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얘기다.
이러한 가치 판단은 미국 진보주의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런데 가치 판단은 종종 상황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보수주의자들이 물가상승을 예측할 때, 개량주의자들은 불황을 경고한다.
새뮤얼슨은 이러한 경향을 지적하면서, 자신은 절충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말한다.
"진보적"이면서도 "절충적"이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대목이다.
새뮤얼슨의 진보와 절충은 시장에 관한 주장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경제계획의 효율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이 회의는 공산권의 붕괴에 의해 더 커졌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손"의 효율성에 대한 아담 스미스의 주장도 신뢰하지
않는다.
경쟁적 시장을 통해서만 정보가 수집되고 활용될 수 있다는 하이에크
(F.Hayek)의 주장에 대해서도 냉담하다.
기업의 자유와 개인의 자유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시카고학파의 주장에
대해서는 더욱 비판적이다.
그에 의하면, 자유 시장과 파시스트 국가는 병존할 수 있다.
피노체트 군사독재정권과 "시카고 보이"의 결합은 그 극단적 사례이며,
한국과 대만과 싱가포르는 그 대표적 사례이다.
새뮤얼슨은 진보와 절충에 앞서서 실증을 강조한다.
경제학자인 그에게 실증적 분석은 절대 명령이며 기본 제약이다.
그래서 시카고대학의 일부 경제학자들이 주장한 연역주의를 비판하고,
미제스와 하이에크의 선험주의를 배격한다.
그는 이론은 내적 성찰에 의해 연역되거나 확인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객관적 사실로부터 유추되어야 하고 객관적 사실에 의해서 검증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새뮤얼슨의 경제학방법론은 일찍이 "경제분석의 기초"에서 제시됐다.
그는 이론의 실증적 의미를 강조하였으며, 자신의 방법론을 조작주의
(operationalism)라고 불렀다.
조작주의는 실증주의의 한 변형으로서 "구체적 조작에 의해 정의된 개념만
이 의미를 가진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의 경제학방법론이 주목을 끌게 된 것은 프리드만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였다.
프리드만은 1953년의 책에서 이론의 가치는 가정의 현실성에 있지 않고
결론 혹은 예측의 현실성에 있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가정이 비현실적일수록 이론은 더욱 유용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주장은 그후 많은 경제학자들에 의해 우호적으로 인용되고 있다.
그러나 1963년의 토론에서 새뮤얼슨은 "F-트위스트(twist)"라는 기발한
용어를 사용하면서 프리드만을 비판했다.
새뮤얼슨의 비판은 그 자체가 왜곡을 포함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F-트위스트는 유행어가 되어 버렸다.
새뮤얼슨은 실증주의자인가.
그는 분명 실증주의를 설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그 자신은 어떠한 구체적 수치도 예측하지 않았다.
통계를 사용해 측정하거나 검증하지도 않았다.
물가와 실업의 역관계를 측정하기는 했으나 거의 유일한 예외일 뿐이며
그나마 솔로우(R.Solow)와의 공동 연구였다.
또 계량경제학에 대해서 지극히 회의적인 견해를 드러낸다.
케인스 거시경제모형을 측정한 클라인(L.Klein)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그의 선택은 내향적 성찰과 일상적 관찰에 의존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절충주의자 새뮤얼슨을 만난다.
김진방 < 인하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jkim@inha.ac.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26일자 ).
놀라게 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기계 속에 사람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와튼(Wharton)의 계량경제모델 속에서 결국에는 로렌스 클라인
(Lawrens Klein)을 발견한다면 역설적일 것이다"
< 새뮤얼슨의 "황금시대의 경제학:개인적 회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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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슨은 최근 자신의 정책 신조와 연구 방식을 설명하면서, 희생자를
편들고 불평등을 혐오하는 것이 자신의 이데올로기라고 말했다.
효율과 평등이 맞서면 평등에 비중을 두고, 기업의 자유보다는 실업을 더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얘기다.
이러한 가치 판단은 미국 진보주의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런데 가치 판단은 종종 상황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보수주의자들이 물가상승을 예측할 때, 개량주의자들은 불황을 경고한다.
새뮤얼슨은 이러한 경향을 지적하면서, 자신은 절충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말한다.
"진보적"이면서도 "절충적"이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대목이다.
새뮤얼슨의 진보와 절충은 시장에 관한 주장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경제계획의 효율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이 회의는 공산권의 붕괴에 의해 더 커졌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손"의 효율성에 대한 아담 스미스의 주장도 신뢰하지
않는다.
경쟁적 시장을 통해서만 정보가 수집되고 활용될 수 있다는 하이에크
(F.Hayek)의 주장에 대해서도 냉담하다.
기업의 자유와 개인의 자유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시카고학파의 주장에
대해서는 더욱 비판적이다.
그에 의하면, 자유 시장과 파시스트 국가는 병존할 수 있다.
피노체트 군사독재정권과 "시카고 보이"의 결합은 그 극단적 사례이며,
한국과 대만과 싱가포르는 그 대표적 사례이다.
새뮤얼슨은 진보와 절충에 앞서서 실증을 강조한다.
경제학자인 그에게 실증적 분석은 절대 명령이며 기본 제약이다.
그래서 시카고대학의 일부 경제학자들이 주장한 연역주의를 비판하고,
미제스와 하이에크의 선험주의를 배격한다.
그는 이론은 내적 성찰에 의해 연역되거나 확인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객관적 사실로부터 유추되어야 하고 객관적 사실에 의해서 검증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새뮤얼슨의 경제학방법론은 일찍이 "경제분석의 기초"에서 제시됐다.
그는 이론의 실증적 의미를 강조하였으며, 자신의 방법론을 조작주의
(operationalism)라고 불렀다.
조작주의는 실증주의의 한 변형으로서 "구체적 조작에 의해 정의된 개념만
이 의미를 가진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의 경제학방법론이 주목을 끌게 된 것은 프리드만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였다.
프리드만은 1953년의 책에서 이론의 가치는 가정의 현실성에 있지 않고
결론 혹은 예측의 현실성에 있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가정이 비현실적일수록 이론은 더욱 유용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주장은 그후 많은 경제학자들에 의해 우호적으로 인용되고 있다.
그러나 1963년의 토론에서 새뮤얼슨은 "F-트위스트(twist)"라는 기발한
용어를 사용하면서 프리드만을 비판했다.
새뮤얼슨의 비판은 그 자체가 왜곡을 포함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F-트위스트는 유행어가 되어 버렸다.
새뮤얼슨은 실증주의자인가.
그는 분명 실증주의를 설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그 자신은 어떠한 구체적 수치도 예측하지 않았다.
통계를 사용해 측정하거나 검증하지도 않았다.
물가와 실업의 역관계를 측정하기는 했으나 거의 유일한 예외일 뿐이며
그나마 솔로우(R.Solow)와의 공동 연구였다.
또 계량경제학에 대해서 지극히 회의적인 견해를 드러낸다.
케인스 거시경제모형을 측정한 클라인(L.Klein)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그의 선택은 내향적 성찰과 일상적 관찰에 의존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절충주의자 새뮤얼슨을 만난다.
김진방 < 인하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jkim@inha.ac.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26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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