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에서 시작된 남미 외환위기의 불길이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루디거 돈부시 미국 MIT대 교수는 중남미 위기를 "응급조치에만 매달려
구조적 개혁이라는 대명제를 잊고 있는 까닭"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한국경제신문에 보내온 특별기고를 통해 브라질이 통화위원회 제도를
채택하고 국내부채의 상환 일정을 재조정하는 등 시급한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 정리=조주현 기자 fore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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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금융불안이 계속되고 있다.

브라질은 금융위기가 발생한 첫단계에서 환율변동폭을 소폭 확대하는
미봉책을 구사했었다.

브라질 정책당국자들은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브라질 의회는 작년에 이미 통과됐어야할 법안들을 막다른 골목에 몰린
지금에야 손보고 있다.

경제의 번영 발전이라는 것이 주식시장이나 민영화, 또는 외국에서 돈을
얼마나 빌려오느냐는 지표 만으로 표현되지는 않는다.

경제 전반의 생산성이 올라가는냐,그리고 미래에 대한 투자가 얼마나 늘어
나느냐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지표다.

지난 20여년 동안 브라질에서 실질적인 번영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는 과대포장된 화폐가치를 방어하는데 전념했을 뿐이다.

번영과 안정을 염두에 둔 기본적인 문제제기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브라질 정부는 거대한 악성부채를 지게됐고,그것은 두배 세배로 불어났다.

그리고 국제금융시장이라는 "도박판"에서 빈털털이가 됐다.

브라질 정부는 물론 다른 라틴 아메리가 국가들도 안정된 체제구축을 위해
수없이 많은 시도를 해왔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브라질 레알화 정책(Real plan)도 붕괴됐다.

레알은 다른 나라 화폐보다는 수명이 길었다.

그리고 훨씬 나아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외부에서 빌려온 돈으로 지탱된 것이었다.

민영화에서 얻는 이익은 대통령이 새로운 임기를 얻기 위해 사용됐다.

브라질 국민들은 엄청난 불평등과 가난 속에서 감내해야 하는 다양한
고통에 익숙해져 있었다.

투자가들은 "그래 브라질은 달라"하면서 이같은 상황을 내심 즐겨왔다.

멕시코가 그랬던 것처럼 브라질도 무너질 수 밖에 없는 내적요인들을 키워
왔다.

단순히 아시아 위기의 전염 때문 만은 아니다.

과대포장된 환율, 엄청난 규모의 재정적자와 단기 해외부채,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국내부채 등을 그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브라질이 그동안 자랑해온 것은 인플레를 잡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플레가 발생하지 않는 경제구조를 만들어 냈다고는 판단되지
않는다.

긴축재정과 굳건한 환율정책을 취하지 않는 상태에서 얻는 안정은 언제나
행복과 도취감을 준다.

인플레율은 낮고 해외에서 돈이 쏟아져 들어오며, 주식시장이 활황세를
유지하면서 소비는 증가했다.

완전한 성장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곧 다른 징후가 나타났다.

갑자기 이자율은 올라가고 부채 만기일은 점점 다가온다.

도산하는 업체가 늘어난다.

이때 IMF(국제통화기금) 같은 외부 기관들이 조언을 시작한다.

그러나 최후의 단계는 의외로 금방 다가온다.

투자가들이 돈을 들고 떠나가버리는 때다.

높은 이자를 견디지 못하게 되고 신용거래는 중단된다.

환율은 지탱할 수 없게된다.

거품은 이렇게 고통스럽게 제거된다.

외환위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랜 기간동안 싹을 틔워 왔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에서 그것은 급속하게 현재화된다.

브라질의 경우도 그렇다.

놀랄만한 건 멕시코에 이어 아시아, 러시아가 경제위기를 맞게 되었고 그
다음이 브라질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투자자들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대규모로 투자했다가 실패해도 발목에 물만 적시고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IMF와 국제금융기구들의 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브라질 정부는 어떤 입장인가.

설마 그들은 아직도 IMF라는 산타 클로스의 등장을 믿고 있을까.

아직도 대마불사의 신화를 믿고 있는 것일까.

답은 명확하다.

브라질 정부는 경제에 대한 여러가지 비판들을 수용할 의사가 없었다.

이는 IMF가 재정안정에 도움을 줬다기 보다는 불안정을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을 뜻한다.

캉드쉬 IMF 총재는 사태를 장악하지 못했다.

경제를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는 3단계 조치가 필요하다.

첫번째는 통화위원회(Currency Board) 제도를 도입하는 문제인데 매우
시급하게 처리해야 될 문제다.

인플레이션과 환율불안은 지난 20년간 브라질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이 때문에 경제성장률은 0%대에 엎드려 있었다.

아르헨티나가 그랬던 것처럼 브라질도 중앙은행을 폐지해야 한다.

물론 이런 조치는 경제규모가 크고 성장일로에 있는 국가에서는 매우
치욕스럽게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최악의 경제상황을 겪어온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중앙은행이 갖고 있는 전통적인 기능은 3가지 측면에서 파악된다.

국가적 자존심과 통화발행 능력, 외환조절기능 등이다.

브라질 레알화가 몇년안에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위력을 갖는 통화가 된다는
한때의 주장은 농담으로 끝나고 말았다.

통화를 많이 발행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지만 환율을 조정하는 것은 불가피
한 일이다.

그렇다고 홍콩과 아르헨티나가 채택하고 있는 통화위원회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통화위기 속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이었다는 사실은 주지의
사실이다.

브라질은 그들이 갔던 길을 밟아갈 수 있는 것이다.

두번째 조치는 바로 국내채무의 재조정이다.

국내부채들은 만기가 극도로 짧고 이자율이 달러나 금융시장에 연동돼
움직인다.

따라서 폭발적으로 불어난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이자는 재정위기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만기일 부담을 줄여주고 이자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브라질이 몇년 전에 한번 실시했던 것처럼 부실채권을 탕감해 주는 방법도
생각할 수있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도 브라질에 돈을 더이상 빌려주지 않을 것이라는데
있다.

빌려준 돈이 동결되거나 채권자체가 없어질 것이 뻔한 상황에서 돈을
꿔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번째 단계로는 구조적 개혁을 추진하고 신용을 회복하는 것이다.

브라질 정부는 민영화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민영화 과정도 투명해야 한다.

정부가 은밀한 비즈니스에서 발을 뺀다면 개혁은 이미 절반정도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나머지 절반은 정부가 더이상 말도 안되는 룰을 만들어 내는 것을 중단하는
것이다.

브라질은 2개의 커다란 짐을 지고 있다.

금융위기로 부터 벗어나는 것과 새로운 사회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브라질은 스스로 짊어진 십자가로부터 헤어나야만 한다.

< LG타임스 신디케이트 독점전재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