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국경영자총협회 주최의 경영조찬세미나

연사로 나온 박태영 산업자원부 장관은 올해 산업정책 방향에 대해 설명하면
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기술력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우리의 기술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있습니다. 스위스 IMD사가
조사한 주요국의 기술개발력 지수를 보면 미국을 100으로 했을 때 우리는
6.55에 불과합니다"

박 장관은 우리나라 주요 산업의 핵심 기술이 선진국의 40~60%라고 지적하고
이날 기업인들에게 기술개발을 거듭 당부했다.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기술개바을 꼽는데 주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회사의 기술력 수준은 그 회사의 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기술력을 가진 회사는 제품의 품질이 좋은 것은 물론 제품 제조원가도 낮아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된다.

또 일정기간 시장을 독점할 수 있어 엄청난 이윤을 보장받는다.

제너럴 일렉트릭(GE)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소니등이 엄청난 이윤을
남기면서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GE의 경우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고부가가치 업종으로의 사업재편으로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GE는 지난해 1천5억달러의 매출에 93억달러의 순이익을 올렸다.

매출액이익률이 9.3%로 미국 제조업 평균(5%)보다 2배나 높다.

인텔도 컴퓨터 CPU를 개발함으로써 수년째 세계 시장을 독점하며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의 기술력이 뒤떨어지는 것은 우리 경제의 성장배경과 관련이
있다.

자원이 없는 상황에서 수출 주도의 경제발전을 하다보니 조립가공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기술개발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그러나 조립가공 위주의 성장은 이제 더이상 발 붙일 곳이 없다.

이미 10억 인구를 가진 중국은 저임금을 무기로 우리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섬유 신발 피혁등은 이미 시장을 내주었다.

이제 기술력 확보만이 남았다.

생산기술은 어느 정도 확보됐다.

문제는 원천기술이다.

조립가공기술의 기반위에 모방하지 말고 기술을 직접 개발해야 한다.

그리고 개발된 기술을 세계 표준으로 만들어야한다.

원천기술의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동전화시장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삼성전자 LG정보통신 현대전자 등은 CDMA(부호분할다중접속)단말기 한 대를
팔 때마다 판매가격의 5.75%를 CDMA기술을 처음 개발한 미국 퀄컴사에 로열
티로 내고있다.

또 퀄컴사로부터 핵심 칩을 수입하는 데 단말기 한대당 평균 10달러
정도를 지급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지난 93년이후 퀄컴에 준 돈이 무려 1억9천만달러.

우리가 CDMA를 상용화하는데 성공했지만 정작 재미는 퀄컴이 보고있는
것이다.

개발된 기술을 표준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표준화는 바로 시장확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고선명(HD)TV는 표준화의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HD TV는 지난 80년대 후반 일본 기업에 의해 세계 처음으로 개발됐다.

일본 기업들은 88서울올림픽때 이를 시험 방송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표준화기술로 채택되는 과정에서 미국업체들에 뒤지고
말았다.

이에따라 일본업체들은 지금 오히려 미국업체들의 기술을 도입, 제품을
만들고있다.

VTR도 마찬가지다.

베타맥스 방식의 VTR를 처음 개발한 회사는 소니였다.

그러나 마쓰시타가 히타치 RCA등과 VHS방식을 개발, 세계표준으로 채택되는
바람에 VTR 시장은 현재 소니가 아닌 마쓰시타가 주도하고있다.

원천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기초기술이 뒤따라야한다.

설계기술 시스템기술이 뒷받침돼야한다.

또 기술은 시장과 연계시켜 개발돼야한다.

수요가 있는 제품의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힘들여 개발했다고 하더라도 상품화에 성공할 수
없다.

상품기획이 강조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수많은 기술이 개발되고 있지만 사장되는 기술 역시 엄청나다는 사실을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제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시장동향을 파악하는 곤충의 더듬이 기능을
시급히 확보한후 독자적인 기술(제품)을 개발해야 한다"

서울대 이면우 교수는 "신창조론"에서 우리나라 제조업 기술을 단봉의
낙타봉으로 비유하면서 기술정보 상품기획 연구개발 사후관리등을 생산
(낙타봉)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 박주병 기자 jbpar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