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럴일렉트릭(GE) 모토로라 얼라이드시그널 소니''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기업들이다.

내부로 눈을 돌리면 또다른 공통점도 찾아진다.

최고경영자의 의지로 6시그마를 추진해 "혁신"을 이뤄냈다는 점이다.

잭 웰치 GE 회장.

자필 서명한 서한문으로 6시그마의 중요성을 알리고 사업보고도 6시그마
베이스로 작성토록 요구했다.

그는 이런 열정으로 "6시그마의 GE화"에 성공했다.

GE가 6시그마 벤치마킹 대상이 된 것은 물론이다.

6시그마의 선구자인 모토로라.

"품질은 공정에서 만들어진다"

로버트 갤빈 회장의 깨달음이 6시그마로 진화했다.

얼라이드시그널의 로렌스 보지디 회장은 강력한 리더쉽으로 6시그마를
체계화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소니도 6시그마를 총괄하는 CQO(최고품질책임자)를 사장이 겸임중이다.

6시그마와 최고경영자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들이다.

6시그마의 성공에는 최고경영자의 마인드가 전제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6시그마는 통계상의 수치에 불과하다.

이것을 경영목표나 기법 기업활동으로 바꾸는 것이 바로 경영자의 의지다.

6시그마는 1백만개중 3.4개 이하의 불량을 목표로 회사 전체가 추진하는
활동이다.

제조부문에 한정되지 않는다.

마케팅 엔지니어링 서비스 계획 등 경영활동 전반이 해당된다.

서울대 경영대 안상형 교수는 "모토로라의 갤빈 회장이 경영위기를 타개
하려고 일본의 품질운동을 몸소 배워 적용한 것이 6시그마의 출발"이라며
"최고경영자가 직접 나서야 확산 속도도 빠르고 성공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6시그마가 분임조활동 등 기존의 보텀업(bottom-up) 품질운동과 달리
강력한 톱다운(top-down) 형태를 띠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용면에서도 최고경영자의 마인드가 관건이다.

6시그마는 품질향상을 공정(process)에서 찾고 있다.

사후검사보다 문제 공정을 찾아 제거하면 효율이 높아진다는 분석에서다.

공정을 측정 분석 개선해 결과를 정착시키는데 교육과 시스템은 필수이다.

GE는 6시그마 도입에 무려 4억달러를 지출하고 있다.

소니는 6시그마 교육기관인 "6시그마 아카데미"에 44명을 수강시키면서
수억엔을 지출했다.

결국 최고경영자의 의지가 없이는 6시그마가 이뤄지기 힘들다는 결론이
나온다.

안 교수는 "최고경영자가 품질을 높이면 비용은 오히려 줄어든다고 인식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 입장에서 최고경영자의 마인드는 더욱 중요하다.

국내의 품질운동은 1백ppm(1백만개중 1백개) 수준.

6시그마는 이보다 몇 단계나 높다.

지레 겁부터 먹고 포기하는 사례까지 우려된다.

그래서 최고경영자의 의지가 요구된다.

KAIST 출신 박사 4명이 구성한 품질분야 연구그룹인 "QUART"는 "급격한
혁신이 6시그마의 목표"라며 "최고경영자의 의지만 있다면 낮은 품질수준은
더 큰 도약의 기회가 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최고경영자의 의지가 관건이 되는 이유는 또 있다.

모기업과 협력업체와의 관계이다.

모토로라를 예로 들어 보자.

내부에서 아무리 완벽하게 추진해도 5.75시그마에 머무른다는 사실을 실증적
으로 분석해 냈다.

부품 공급업체가 완벽하지 않아서이다.

우리의 경우 협력관계는 최고경영자의 호불호로 결정되기도 한다.

이런 여건이라면 6시그마는 공염불이다.

품질을 잣대로 협력관계를 결정짓는 경영마인드가 전제돼야 6시그마도
성공한다.

6시그마 인프라 구축에 대한 정부 지원도 필수적이다.

미국이 90년대 들어 일본을 따라 잡은 배경은 6시그마였다.

그 토대는 매사츄세츠공대(MIT) 산업생산성위원회가 89년 펴낸 "메이드 인
아메리카"라는 보고서.

산업 전반을 검토한 뒤 "근본적인 품질대책을 실행할 경우 일본을 추월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려 6시그마를 이끌어 냈다.

미국 정부는 수백억원의 보고서 용역비를 지원했다.

또 89년엔 말콤 볼드리지상을 제정해 품질경영의 저변을 넓혀 왔다.

"메이드 인 코리아"가 절실한 시점이다.

산업자원부 김균섭 산업기술국장은 "품질 관련기관이나 업종단체와 공동
으로 올해 6시그마 인프라 구축작업에 나설 계획"이라며 "내년에는 산업기술
기반 조성사업 차원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 박기호 기자 khpar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