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석 < 삼성경제연구소장 >

정부의 개혁작업은 타이밍상으로 매우 어려움이 예상된다.

IMF사태와 신정권 출범이라는 찬스를 놓친데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벌써 IMF사태의 긴장이 풀어져 밥그릇 싸움이 노골적이다.

따라서 관심도 정부기능에 대한 것보다는 조직에 대한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

완전히 공급자 중심사고다.

공동정권의 파워게임까지 겹쳐 잘못하면 사공이 많은 배가 산으로 올라갈
우려도 있다.

따라서 기구개편은 꼭 필요한 최소한으로 줄이고 운용면의 개선을 도모하는
것이 더 실질적일지 모른다.

지금 정부개편에 있어 가장 시급한 것이 정책의 조정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경제부문의 경우를 보자.

대통령이 경제조정회의를 주재한다고 하나 거기서 토론과 조정이 다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렇다고 재경부장관이 총괄 조정하기엔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약하다.

그러니 각 부처에서 제각기 소리를 내고 각개약진식으로 추진된다.

민간의 입장에선 매우 혼란스럽다.

사회가 민주화되고 다양해짐에 따라 갖가지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정도가 너무 심하다.

옛날같은 일사불란은 아니더라도 방향은 같아야 하고 정책의 시행착오를
줄여야 한다.

개발연대엔 큰 기능을 하던 경제총수제가 최근 역작용을 빚어 없어진 것은
제도보다 운용의 문제일 것이다.

경제가 복잡해지고 안팎 정세가 격변할수록 팀플레이가 중요하다.

사전에 토론을 충분히 하여 문제점을 여러 각도에서 점검하고 일단 결정된
후엔 같이 밀어야 하는데 그게 제대로 안되고 있다.

문제는 문민정부때 행정개혁을 한답시고 기획원과 재무부를 합쳐 덜컥
재경원을 만든데서 비롯된다.

공룡부처가 탄생해 체크 앤드 밸런스 기능이 없어지고 정책불균형이
일어난 것이다.

현실적으로 경제부총리는 경제전략이나 조정보다 우선 재무부의 현안문제에
매달리게 됐다.

발등의 불끄기에 급했던 것이다.

모든 문제들이 대증요법식으로 처리되고 국가적 경제.산업 전략이나 경기
대책 같은 것은 아무래도 뒷전이다.

그래서 국민의 정부 행정개혁땐 재경원을 해체하면서 힘을 빼버리니 또
다른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이다.

조정기능과 기획기능이 죽은 것이다.

옛날과 달라 대통령이 일일이 경제문제를 다 챙길 수도 없고 국무총리도
마찬가지다.

외국의 경우엔 신축적으로 대통령의 위임을 받아 위원회식으로 할 수가
있다.

고어 미부통령이 정보하이웨이나 정부개혁들을 책임지고 처리한 것이 좋은
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그렇게 탄력적으로 잘 되진 않는다.

그렇게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경제총수의 기능이 다시 필요하다.

현재와 같은 IMF체제에선 더욱 그렇다.

옛날 기획원 기능중 현업업무는 떼고 기획과 경제조정기능을 담당하되
정부혁신과 21세기 국가전략, 지방화, 정보화의 대비책들을 같이 다루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정책수단으로선 예산편성기능이 필요하다.

옛날 기획원을 다른 부처 사람들은 뜬구름 잡는 사람들이라고 놀렸는데
21세기엔 그런 뜬구름 잡는 일도 필요하다.

경제총수가 존재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시대를 앞서가는 전략을 짜고 그것을
설득시킬 수 있는 안목과 능력이 있어야 한다.

창조적이고 우수한 인력들이 필수적이다.

세상이 변했는데 옛날처럼 하면 기획조정기능은 소멸될 것이다.

재무부는 국가의 전통기능인 국고 세제 금융 외환업무등을, 금감위는 지금
긴급사태이기 때문에 하중이 너무 많이 실리지만 정상적 금융감독 업무를
맡으면 된다.

정책조정이 제대로 되려면 운용의 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무엇보다 경제총수에 앉을만한 사람이 앉아야 하고 대통령이 믿어야 한다.

지위만으로 결코 정책조정이 되는 것이 아니며 다른 장관들이 납득할만한
권위와 힘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경제계에 보이지 않는 서열이 있다.

그걸 무시하고 엉뚱한 사람이 경제총수가 될 때 혼선이 생기는 것이다.

또 예산권만으로 각 부처를 달래고 조정하기는 힘들다.

대통령의 뒷받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경제총수에 힘이 모이면 씹히기도 쉽다.

엄정하게 제대로 일을 하면 여론과 표를 의식하는 여당측에서 불만이
나온다.

온갖 불만이 집중되고 모두들 같이 흔들게 된다.

그때마다 대통령이 신뢰하고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일도 못하고 갈팡질팡하다 나가게 된다.

과거 장기영 김학열 남덕우씨등 큰 업적을 낸 경제총수와 그후의 단명들과의
차이는 바로 사람을 제대로 앉혀 일할 여건을 만들어 줬느냐의 여부일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