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든 재산을 북에 남겨둔 처와 자식들에게 상속한다"

임종때까지 북의 가족을 그리워했던 한 실향민의 유언이 실정법의 벽에
부딪쳐 좌절됐다.

6.25 사변때 월남한 김모(88.사망)씨.

그는 지난 61년 취적신고를 하면서 자신만 호적에 올린후 백모씨와
결혼했다.

김씨는 결혼후 백씨가 데려온 전남편의 두딸중 큰딸을 양녀로 입양,
독일유학을 보내는등 정성을 기울였다.

그러던중 부인 백씨마저 지난 86년 먼저 타계했다.

김씨는 상처한뒤 홀로 지내다 입원했던 병원의 간호보조원 이모씨와
임종전까지 함께 살았다.

김씨는 지난 96년 1월 사망직전 간호사인 이모씨 등에게 유산 관리를
맡겼다.

김씨는 "전재산을 북한에 있는 처와 자식들에게 물려주라"는 유서를
이들에게 남겼다.

김씨가 남긴 재산은 아파트 한채, 예금 1억6천여만원과 "조선청화백자
화문로"등 도자기 53점및 그림 6점, 동서예 3점등 고미술품들이다.

그러나 임종도 지키지 않았던 양녀 유모씨가 독일에서 돌아오면서 분쟁이
시작됐다.

유씨는 귀국하자마자 김씨의 사망및 호주승계인으로 신고한뒤 아파트및
예치금 반환등을 요구했다.

이에 이씨는 양녀 유씨를 상대로 소송에 들어갔다.

그러나 소송결과는 이씨의 패소.

11일 서울고법 민사9부(재판장 우의형부장판사)는 동거인 이씨가 재산을
지키기 위해 양녀 유씨를 상대로 낸 소유권 이전등기 말소등기 청구소송에서
"유서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사망한 김씨가 월남후 자신만 호적에 올리는등
북측 가족에 대한 증거를 남기지 않은 만큼 양녀로 입적된 유씨가 유일한
상속자"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김씨의 유서에는 작성 년월일과 주소가 기재돼 있지 않아
법적인 효력을 가질 수 없다"고 판결했다.

사망한 김씨만이 유서의 진의를 알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 손성태 기자 mrhand@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