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과점"이 가속화되고 있다.

통신 자동차 회계 등 거의 모든 산업에서 덩치 큰 3~6대 기업이 세계시장을
나누어 지배하는 독주현상이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자동차와 담배업계에서는 3대 업체가 시장을 분할 점령하는
"빅3"체제가 굳어져 있다.

회계업계는 "빅5", 정보통신은 "빅4"가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자동차 통신 등을 필두로 국경을 뛰어넘는 대형 M&A(인수합병)
붐이 확산되고 있어 조만간 세계시장 전체가 소수의 특정 업체들에 좌우되는
시대가 임박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자동차업계의 경우는 미국의 GM과 포드 2개사를 비롯, 일본의 2개사와
유럽의 소수 업체 등 세계적으로 6-8개의 업체들이 글로벌 시장을 과점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현재 10개 업체가 지배하고 있는 세계 제약업계도 글로벌 M&A 등을 통해
과점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항공기 제조의 경우는 미국의 보잉과 유럽의 에어버스 양사체제로 이미
굳혀졌다.

세계 음료시장은 미국의 코카콜라와 펩시, 캐드베리 슈웹스 등 3개사가
장악한 지 오래다.

여기에다 독일 자동차회사인 다임러 벤츠의 미국 크라이슬러 인수, 영국
통신업체인 보다폰의 미국 에어터치커뮤니케이션즈 합병 등으로 글로벌
과점은 더 심해지게 돼 있다.

미국 포드자동차는 스웨덴의 볼보 인수를 추진중이며 타이어업계에서는
미국의 굿이어가 일본의 스미토모 타이어와 제휴키로 하는등 글로벌
단일시장을 겨냥한 합병이 꼬리를 잇고 있다.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거대기업들이 독점보다는 "적당한 과점"이 장기적으로
더 유리하다는 판단아래 특정 기업들과의 "과점적 경쟁(oligopolistic
competition)"을 선호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시장을 독점할 경우 감독 당국으로부터 까다로운 규제와 감시를 받아야
할 뿐 아니라 80년대의 AT&T처럼 자칫 "기업 분할"조치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자기혁신을 위해서도 적당한 경쟁상대가 있는 게 낫다고 보고 있다.

"과점의 승리(The Triumph of Oligopoly)"라는 책의 저자인 루이스
갤럼보스 존스 홉킨스대 교수는 "미국의 거대기업들은 전통적으로 독점보다는
과점을 더 선호해왔다"며 "글로벌화의 진전에 따라 과점의 무대가 전세계
시장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각국 정부 관계자들도 무분별한 기업 난립 보다는 소수의
대기업들에 의한 과점체제가 소비자들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판단아래
과점 현상을 방관하는 추세라고 분석한다.

도이체방크의 이코노미스트인 노르베르트 발터는 "구멍가게들만 난립해
있을 경우보다 소수의 슈퍼마켓이 시장을 지배하는 쪽이 가격인하 경쟁
등에서 소비자들에 더 유리한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한다.

또 특정 대기업들이 시장을 과점하고 있을 경우 제품 및 기술 표준화가
손쉬워 관련 산업의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과점체제는 속성상 관련 기업들간 담합에 의한 가격조작 등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실제로 일본과 유럽의 몇몇 업종에서는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소수업체들간
의 가격담합이 고질적인 문제가 돼있다.

유엔의 무역 조사관인 칼 사우반트는 "글로벌화 물결로 무역 및 투자의
국경이 허물어진 반면 세계적 과점현상으로 가격담합등의 사적인 장벽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