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판 인부에서 "발명도사"로 화려하게 변신한 인물이 있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오당동에서 자동수문을 생산하는 (주)명성수문의
한상관(42) 사장이 그 주인공.

한 사장은 지난 85년 사업을 시작한 이래 대기.수질.자동차 등 환경관련
산업재산권을 잇따라 출원,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그가 지금까지 출원한 산업재산권은 특허 1백2건(국제특허 2건포함), 상표
20건, 실용신안 1백20건, 의장 2백80건 등 총 5백22건.

이중 자동수문과 개량분필 등 출원한 특허의 10%정도에 대해선 이미 등록을
마쳤다.

"발명도사"란 별명도 그래서 붙었다.

그는 특허를 내는데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특허를 곧바로 사업화하는 경영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지난 95년 2천만원에 불과하던 매출을 지난해 20억원대로
끌어올렸다.

한사 장은 자동수문으로 짭짤한 재미를 봤다.

이 제품을 저수지나 수로에 설치하면 저수량확보는 물론 수질정화까지
가능해 사용자들로부터 호평을 얻고 있다.

지난 95년 경북 구미시(천평천)에 처음 이 수문을 납품한이래 전국각지에서
매년 주문이 크게 늘고 있다.

특히 지난해 8월에서 10월사이엔 모방업체가 발붙일 수 없도록 자동수문
관련 의장을 1백60건이나 잇따라 출원했다.

특허권리를 지켜나가려는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반증이다.

한 사장이 발명도사가 된데는 그만의 사연이 있다.

그는 3.1만세운동으로 유명한 충남 병천 출신.

독립운동을 측면에서 지원하던 할아버지가 "신기술로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유언을 남긴게 그를 "발명도사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그러나 가정 형편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5남매의 장남인 한 사장은 중학을 졸업한뒤 농사일과 공사판을 전전한다.

어려운 가정 형편탓이다.

그 와중에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면 이를 꼼꼼히 메모해뒀다.

1년에 메모수첩을 10여권 사용할 정도.

85년부터 철구조물과 토목업에 손을 대면서 사업가로 변신하는데 성공,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는 못배운게 못내 아쉬워 검정고시를 거쳐 방송통신대에 진학했다.

지난해 경영학과을 졸업한 그는 곧바로 행정학과에 편입, 주경야독을 하고
있다.

"발명인들이 뛰어난 기술을 개발하고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주변여건이
안타깝습니다"

한사장은 앞으로도 특허를 계속 내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 대전=남궁덕 기자@nkdu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