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모임] '하나소리사물놀이'..유태수 <발명진흥팀 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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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소리"는 94년 8월에 창립됐다.
북 장고 징 쇄 등 4개의 악기를 연주해 하나의 소리를 낸다는 뜻이다.
한국발명진흥회의 윤종철 이홍식 김현태 유태수 등 젊은 직원 4명이
의기투합했다.
그동안 2번의 정식 발표회와 5번의 야외공연 등 왕성한 활동을 했다.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일일호프행사를 열기도 했다.
"하나소리"에 음악을 전수해 준 분은 남사당놀이 보존회 장정혜 선생이다.
1주일에 두번씩 남사당놀이 보존회에서 초급부터 배웠다.
4명의 멤버는 그곳에서 배우는 시간만으로는 너무나 큰 갈증을 느꼈다.
그래서 매일 퇴근후 한강시민공원에 나가서 주변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일요일에도 연습은 계속했다.
때문에 회원의 아내들은 불만을 터뜨릴 수 밖에 없다.
이대로는 안되겠다싶어 우리는 "일요일은 온가족이 한강시민공원으로
소풍가는 날"로 정했다.
모두들 김밥을 싸들고 나갔다.
아이들이 북채를 잡고 악기를 두드리는 모습에서 우리 민족의 혼을 느끼게
되었다.
한강시민공원에서의 피나는 연습덕분에 1년동안 배울 초급과정을 우리는
6개월만에 끝낼 수 있었다.
다시 6개월만에 중급과정도 완성했다.
너무나 빠르게 악기다루는 법을 습득한 4명은 정말 겁없이 불과 2년만에
발표회라는 거사(?)를 갖게 됐다.
공연은 평소 우리의 소리, 우리 것을 좋아하는 한국발명진흥회 김홍두
상근부회장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으로 열렸다.
장소는 대학로에 있는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과학기술회관 대강당등-.
관객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뒷풀이의 분위기도 너무 좋았다.
그러나 우리는 실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사실과 의욕이 너무 앞섰다는
자체평가를 내리게 됐다.
한마디로 익지않은 과일을 따 먹은 것이라고 결론 지었다.
그 뒤 세명의 직원이 더 동참했다.
많은 연습과 활동을 통해 실력을 쌓아갔다.
매년 개최하려고 했던 발표회는 이제 겁이 나서 3년에 한번만 하기로
결정됐다.
그것도 우리 실력으로 발표회를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어 언제 개최될
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네개의 악기가 하나로 조화되는 소리는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것과 또 우리의 소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명제다.
유태수 < 한국발명진흥회 발명진흥팀 계장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23일자 ).
북 장고 징 쇄 등 4개의 악기를 연주해 하나의 소리를 낸다는 뜻이다.
한국발명진흥회의 윤종철 이홍식 김현태 유태수 등 젊은 직원 4명이
의기투합했다.
그동안 2번의 정식 발표회와 5번의 야외공연 등 왕성한 활동을 했다.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일일호프행사를 열기도 했다.
"하나소리"에 음악을 전수해 준 분은 남사당놀이 보존회 장정혜 선생이다.
1주일에 두번씩 남사당놀이 보존회에서 초급부터 배웠다.
4명의 멤버는 그곳에서 배우는 시간만으로는 너무나 큰 갈증을 느꼈다.
그래서 매일 퇴근후 한강시민공원에 나가서 주변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일요일에도 연습은 계속했다.
때문에 회원의 아내들은 불만을 터뜨릴 수 밖에 없다.
이대로는 안되겠다싶어 우리는 "일요일은 온가족이 한강시민공원으로
소풍가는 날"로 정했다.
모두들 김밥을 싸들고 나갔다.
아이들이 북채를 잡고 악기를 두드리는 모습에서 우리 민족의 혼을 느끼게
되었다.
한강시민공원에서의 피나는 연습덕분에 1년동안 배울 초급과정을 우리는
6개월만에 끝낼 수 있었다.
다시 6개월만에 중급과정도 완성했다.
너무나 빠르게 악기다루는 법을 습득한 4명은 정말 겁없이 불과 2년만에
발표회라는 거사(?)를 갖게 됐다.
공연은 평소 우리의 소리, 우리 것을 좋아하는 한국발명진흥회 김홍두
상근부회장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으로 열렸다.
장소는 대학로에 있는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과학기술회관 대강당등-.
관객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뒷풀이의 분위기도 너무 좋았다.
그러나 우리는 실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사실과 의욕이 너무 앞섰다는
자체평가를 내리게 됐다.
한마디로 익지않은 과일을 따 먹은 것이라고 결론 지었다.
그 뒤 세명의 직원이 더 동참했다.
많은 연습과 활동을 통해 실력을 쌓아갔다.
매년 개최하려고 했던 발표회는 이제 겁이 나서 3년에 한번만 하기로
결정됐다.
그것도 우리 실력으로 발표회를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어 언제 개최될
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네개의 악기가 하나로 조화되는 소리는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것과 또 우리의 소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명제다.
유태수 < 한국발명진흥회 발명진흥팀 계장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