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외환거래 자유화 일정을 당초 예정대로 밀어부치기로 결정한 데는
크게 세가지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먼저 언젠가는 풀어야 할 빗장이라면 하루빨리 풀어서 자체 면역성을 강화
하자는 차원이다.

국제금융시장은 이미 광속으로 변하고 있다.

한국 입장에선 지금이라도 뒤쫓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지난해 자유화일정을 발표한 만큼 예정대로 추진해야 외국투자가와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의 신뢰도를 높일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다른 하나는 외환거래 자유화로 얻을수 있는 장점이 예상되는 부작용보다
훨씬 많다는 매력 때문이다.

외환규제를 철폐하면 기업의 금융비용을 줄이고 국내 금융시스템의 경쟁력
도 강화될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도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을 못담글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작용을 견딜만한 경제 체력과 시스템이 갖춰졌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외환시장의 상당부분이 개방돼 있기 때문에 1단계 자유화 조치에 따른
충격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증권시장은 일부 특수 업체를 제외하고는 외국인 지분소유 한도가
대부분 이미 철폐된 상황이다.

또 그동안 외환거래 자유화의 실시에 대비해 마련돼 온 각종 보완대책이
이젠 체계를 갖췄다는 판단도 한몫했다.

금융기관의 건전성 기준과 외환거래에 대한 기업공시 책임을 강화한 데서
이를 읽을수 있다.

외환전산망을 구축해 단기자금 동향에 대해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외환
조기경보시스템과 국제금융센터를 설립키로 한 것도 마찬가지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외자의 일정액을 무이자로 묶어둘 수 있는 가변예치
의무제와 외환거래정지제 등 안전장치(세이프가드)도 제도화했다.

물론 정부도 4월 시행을 앞두고 경제계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돼온 "자유화
일정 연기론"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번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연기론에 귀를 더 기울여 왔다는 후문
이다.

실제로 연기론이 주장하는 대로 아직 국내 금융시장은 완벽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고 기업의 구조조정도 지지부진한게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외환시장의 빗장을 풀면 투기성 단기자금의 유입을 촉발해
또다른 외환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경고도 현실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정부는 자유화 일정을 예정대로 시행하되 미비한 점에 대해서는
최대한 보완책으로 마련하는 방안으로 최종 입장을 정리했다.

미리 확실히 손을 봐 "소를 잃고나서 외양간은 고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
는 뜻이다.

실제로 당초 방안과는 달리 이번 확정안에는 몇가지 보완대책이 새로 추가
됐다.

정부는 앞으로도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보완책을 지속적으로 마련할 방침이다.

김용덕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은 "국제금융시장은 언제나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자유화시기를 늦춘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며 "보완책이 적절히 시행된다면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김준현 기자 kimj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