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세계화'' 바람 ]

로라 타이슨 < 미국 UC버클리대학 교수 >

지난 93년부터 4년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수석 경제고문을 지낸
로라 D.안드레아 타이슨(52) UC버클리 대학 교수는 "미국 유럽 등에서
보호무역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며 "이는 그동안 전세계가 끊임없이
추구해왔던 세계화의 흐름을 끊는 독약과 같다"고 비판했다.

특히 "미국내에서 보호주의가 강하게 일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하고 "미국이 이 유혹을 극복해야 세계 경제가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타이슨 교수의 기고를 정리한다.

< 정리 =박수진 기자 parksj@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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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가 아직 경기침체의 늪을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재작년 아시아에서 시작된 경제위기 파장이 러시아 중남미에서 아직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일본은 벌써 수년째 장기 불항에 빠져있다.

미국 유럽지역의 선진국들도 경기침체의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브라질 사태가 세계경제를 다시 위기국면으로 몰지 않을까하는
경고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여러가지 불안한 문제들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그중 하나가 "역세계화(Deglobalization)" 바람이다.

"세계화"는 다양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세계 각국 정부의 지지아래
지속적으로 추진돼 왔다.

그러나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보호무역주의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는
조짐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작년 콸라룸푸르에서 열렸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은
무역자유화 문제를 다뤘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각국의 이해득실이 얽혀있어 그만큼 "무역자유화 실현"이 어려웠다는
말이다.

더구나 일부 국가들은 초단기 자본 거래가 아시아금융위기를 초래한 측면이
있다며 이에 대한 통제를 주장하기도 했다.

실제로 모하메드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는 단기 자본거래를 통제하는
조치를 실시하기도 했다.

일반 상품무역거래에 대한 관세인상이나 수입쿼터제 등의 조치가 없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들어서는 동아시아에서가 아니라 미국 등 선진국에서 보호무역
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그동안 개도국을 대상으로 줄기차게 자유무역을 요구해왔던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이 문제가 크게 부각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현상이다.

미국과 유럽은 현재 "바나나 분쟁"에 휩싸여 있다.

유럽이 과거 식민지였던 카리브해와 아프리카산 바나나에 대해 차등관세를
부과해 미국 등에 상대적인 피해를 입혔다는게 문제의 핵심이다.

이에 미국은 유럽산 14개 품목에 대해 1백%의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나섰다.

특히 미국은 EU측에 대해 보리를 비롯한 농산물및 철강제품에 대한 수출
보조금 철폐와 금융.서비스시장 개방 등 거의 전분야에 걸쳐 통상 압력을
가하고 있다.

미국은 또 일본 러시아 등 일부 철강수출국과도 무역분쟁을 벌이고 있다.

보호무역주의로 나타나는 역세계화의 조짐은 중국에서도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 정부는 과거 등소평의 주도아래 추진됐던 개방.개혁정책에서 최근에는
한발 물러선 듯한 느낌이다.

물론 중국문제는 아직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또 세계 경제위기 상황에서 보다 신중하게 움직일 필요도 있다.

그러나 아시아 경제부진이 장기화될 때 중국도 결국엔 보호무역주의 정책에
기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보호무역주의 움직임들은 장차 매우 심각한 상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특히 미국은 국내에서 일고 있는 보호무역주의를 잠재우고 경기침체 우려를
씻어내는게 중요하다.

오랫동안 공들인 자유무역과 세계화의 물결을 스스로 거스르는 우를 범해서
는 안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작년 3차례에 걸쳐 금리를 인하한 것도
반도체 철강재 등 일부 업종에서 일기 시작한 보호무역주의를 고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경기가 침체되면 가장 먼저 제기되는 것이 "수입을 줄여달라"는 업계의
보호무역론이다.

사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뿌리깊은 역사를 갖고 있어 언제든 불거져나올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게 정부 관계자들의 판단이다.

이는 30년대 대공황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1929년 10월24일 뉴욕증시가 대폭락하면서 촉발된 대불황으로 전세계
소비는 크게 위축됐다.

생산은 급감하고 실업은 급증했다.

내수기반이 붕괴되자 미국이나 유럽은 수입품 규제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그 첫 조치로 미국은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통해 관세율을 대폭 인상했다.

영국과 프랑스 등도 수입품에 대해 경쟁적으로 높은 관세 장벽을 쌓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과 유럽 기업들은 고율관세라는 담을 쌓으면서 일시적으로나마
한숨을 돌릴 여유를 가졌다.

그러나 각국의 경쟁적인 관세인상은 세계무역을 위축시켜 결국은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를 초래했다.

실제로 세계 75개 주요국가의 총수입규모는 대공황이 발생하기 전인 1929년
1월 29억9천8백만달러에서 대공황이 절정에 달한 1933년 3월에는 9억9천2백만
달러로 3분의1로 축소됐다.

때문에 경제학자 중에는 미국의 불황이 보호무역주의와 경제블록화를 통해
세계 불황으로 발전됐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현재 미국내 보호무역주의는 정치 상황과도 교묘하게 맞물려 있다.

민주당이 이끄는 행정부가 "섹스 스캔들"로 흔들리면서 공화당이 주도하는
의회는 보호무역론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더욱이 민주당 의원들은 자신들의 관점에 그다지 확신이 없는 것같다.

반면 공화당이 대표하는 우파 보호무역론이 힘을 얻을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널려있다.

대통령 탄핵이 거론되는 와중에 반도체 철강제품 등에 대한 관세부과 문제가
불거져 미국 행정부가 직접 나서야 되는 상황에 몰린 것이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결국 미국은 국내의 보호무역론을 극복하면서 세계 경제가 세계화라는 조류
속에서 자연스럽게 회복될 수 있도록 이끌어가야 한다.

미국 정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치적 지도력을 되찾아야 하지만
보호무역주의에 유혹받는 국내업계를 달랠 수 있는 세제해택 등의 수단을
강구하는 것도 좋을 듯 싶다.

< LA타임스 신디케이트 독점전재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