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인 지난 17일 낮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C목욕탕.

독일생활을 마치고 3년만에 귀국한 김성용씨(38)는 실로 오랫만에 동네
목욕탕을 찾았다.

그러나 그는 실내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불쾌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마루바닥을 밟자마자 흥건한 물기가 발바닥에 전해지면서 금새 양말이
축축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목욕후 몸을 닦지 않고 탈의실로 나오기 때문이었다.

탕으로 들어가서는 더 기가 찼다.

온탕 표면은 온통 "때국물"이 뒤덮고 있었다.

물속에 들어갈 정이 뚝 떨어졌다.

할 수 없이 한증막에 들어갔다.

하지만 수건을 지참한 사람은 자기뿐이었다.

수건을 깔고 앉은 뒤 땀을 뺀것도 혼자였다.

한손엔 신문, 다른 한손엔 면도기를 들고 들어선 사람도 눈에 띄었다.

남 생각하지 않고 들락날락하는 사람 때문에 한증막문이 식당문처럼
뻔질나게 여닫히기도 한다.

"독일에서는 일정한 시간대에만 들락거릴 수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목욕을 좋아한다.

주거문화가 개선돼 집집마다 샤워시설이 갖춰져 있어도 대중탕의 인기는
여전하다.

문제는 "대중탕"을 "독탕"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하게 얘기하면 우리나라 목욕탕엔 "목욕예절"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증탕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나와 곧바로 냉탕에 뛰어드는 사람, 면도기와
때밀이 수건을 아무데나 버리고 가는 사람, 물장구를 치면서 떠들어 대는
어린애들을 그냥 내버려 두는 부모들.

몸과 마음을 씻기 위해 찾는 목욕탕이지만 이처럼 "더러운 면"이 더 많다.

심지어 화장실이 따로 있는데도 한귀퉁이에서 슬며시 소변을 보거나
아무데나 침을 뱉는 장면도 쉽사리 목격된다.

여탕에선 "빨래하는 여인"들도 많다.

한국생활이 2년째인 캐나다인 로리 맥과이어씨(31.외대어학원 카운셀러)는
"한국의 목욕탕은 한국인의 성격을 투영해 주는 거울같다"며 "조금이라도
남을 생각해주는 배려는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요즘엔 집에서 샤워만 하고 있다고 말한다.

관광지로 유명한 주요 온천지역에 가봐도 외국인 관광객은 보기 힘들다.

혹시 "나만 씻으면 그만"이라는 그릇된 목욕문화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 대전= 남궁덕 기자 nkdu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