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부터 1천만원이상 은행대출을 받으려면 금융기관에서 빌려쓴 돈은
물론 사채까지 포함한 모든 차입금을 기재한 "부채현황표"라는 걸 작성해야
되는 모양이다. 금융감독원의 지시에 따라 이같이 부채현황표를 제출해야
하도록 은행연합회규약을 바꾸기로 했다는 것이다.

개인파산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만큼 그 의도는 이해가 간다. 그러나 한
풀 더 뜯어보면 참으로 한심한 감이 없지 않다.

우선 실효성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주택 등 부동산담보대출에서 부채
현황표가 왜 필요한지 의문이다. 부동산담보 가계대출의 경우 다른 빚이
있건 없건 은행대출의 회수는 문제될게 없다. 싯가를 밑도는 감정가격기준
70%정도가 대출상한선이고 보면 당연히 그러하다. 친구에게서 빌린 돈은
물론이고 신용카드로 물건을 할부구매한 것까지 모두 기재해야하는 부채
현황표를 이런 경우에까지 굳이 작성토록 하라는 것은 불편함만 가중시키는
꼴이다.

신용대출의 경우라 하더라도 과연 부채현황표가 실제로 유용할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부채현황을 제대로 기재했는지 점검할 방법이 없다면 이런
유형의 서류가 채권의 안전성을 확보하는데 실제로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은
당연하다. 제대로 작성하지 않은 것이 드러날 경우 은행거래를 못하도록
제재를 가한다지만, 현실적으로 밝히기 어려운 사채거래 등이 부채현황표
때문에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어리석은 일이기도 하다.

이미 각 은행은 2천만원 이상의 개인및 가계대출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전산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멀지않아 1천만원이상 대출도 어느 은행에서
받았건 즉각 알수있도록 전산을 통한 정보교환을 확대할 예정이기도 하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내달부터는 1천만원이상, 7월부터는 5백만원이상 대출을
받을 경우 부채현황표를 내도록하는 것이 꼭 필요할까. 이 은행에서 3백만원,
저 은행에서 5백만원등으로 소액대출을 여러 은행에서 받은 사람도 없지는
않을 것이고, 이런 사람들의 부채현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할는지 모르
겠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있다면 전산정보교환을 더 확대하는 방안이
실효성이 있다.

부채현황표는 빚을 제대로 밝히지 않으려는 신용불량자의 소액부채를
파악하는데는 어차피 실효성이 없는 반면 선량한 고객들에게 부담만 줄
뿐이다. 은행도 장사하는 곳이라면 별 실효성도 없으면서 거부반응만 줄
부채현황표 따위의 발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신용카드 자동대출한도등도
점차 늘려가야할 마당에 5백만원이상 대출시 부채현황표가 과연 적절한
것인지 현실적으로 따져볼 문제다.

형식위주의 은행검사를 위해서라면 틀림없이 부채현황표는 요긴할 수 있다.
하나의 점검사항이 될 것이니까. 그러나 그것이 은행경영의 건실성확보에
정말 보탬이 되는 것인지 금감원 스스로 생각해볼 일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