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재판이 시작됐다.

7일 검사에 해당하는 하원 법사위원소속 의원들은 재판정으로 뒤바뀐 상원
본회의장에 하원의 탄핵결의를 전달하고 돌아갔다.

공을 상원에 던져 놓고 간 것이다.

사안의 심각성에 비추어 모양새를 갖추자면 13명의 검사중 민주당쪽 검사가
단 몇명이라도 끼어 있어야 했지만 민주당의원은 단 한명도 없었다.

이번 탄핵이 얼마나 일방적이고 당리당략적이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흥미있는 것은 공을 넘겨받은 공화당 쪽 상원의원들이 오히려 딜레마에
빠져들고 있다는 점이다.

증인출석 등을 생략하고 재판을 조기에 종결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동료
공화당원들이 주도한 탄핵결의와 하원을 격하시키는 꼴이 돼버린다.

상원과 하원은 상대방의 결정을 존중하며 권위를 세워주는 전통과 관례를
갖고 있다.

만일 상원이 약식재판으로 일을 끝내버리는 경우 가뜩이나 수세에 몰려있는
공화당을 더 깊은 수렁으로 모는 결과가 된다.

그렇다고 공화당측 하원의원들의 요구대로 모든 증인을 부르는 "정식재판
(full-scale trial)"을 택할 수도 없다.

재판기간이 한없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증인을 일일이 부르다 보면 반년이상 걸릴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빨리 끝내라"는 국민들의 여망을 저버리는 결과가 된다.

백악관은 "공화당이 정식재판 형식을 고집할 경우 방어를 위해 모든 증인을
불러 적극 대처하겠다"며 장기전을 위한 포문을 열었다.

배수의 진을 친 셈이다.

해볼테면 해보라는 식이다.

1년 가까이 호랑이 등에 올라탄 공화당에 재판 장기화는 이로울 게 없다.

의석분포로 볼 때 유죄로 끝낼 가능성도 없는 마당에 오래 끄는 것은 2000년
선거를 망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배심원자격이라고는 하지만 검사편을 드느라 모양새 좋지 않은 자리에 앉아
TV 카메라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것은 적지않은 부담이다.

미국은 여론이 정치적 역학구조로 곧바로 연결되는 사회다.

이를 무시해온 공화당이 지난해11월 선거에서 패배한게 그 반증이다.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선호와 상관없이 기표소에 들어가서는 영.호남을
갈라 표를 던지는 우리와는 격이 다르다.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여부로 몸싸움을 벌이면서도 염치를 모르는 우리
선량들과 비교하면 그 격차는 더욱 커진다.

< 워싱턴=양봉진 특파원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