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립에서 포용으로 ]

"경쟁의 종언"

세계적 경영컨설턴트인 제임스 무어는 최근 이런 제목의 저서를 내놓았다.

산업사회를 지탱해온 경쟁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게 무어의 메세지다.

대립과 투쟁에서 융합과 포용으로의 전환이다.

이제 전통적 개념의 경쟁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경쟁을 대체할 새로운 패러다임은 생태계에서 찾아진다.

바로 "상생"이다.

생태계에서는 어느 하나의 생명체군이 다른 생명체군을 일방적으로 희생
시키는 존재양태가 허용되지 않는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생명체군도 살려야 하는 것이 생태계의
원리다.

상생은 "현상유지적 협조관계"인 소극적 의미의 "공생"보다 한차원 높은
개념이다.

이를 통해 생태계는 종족유지를 넘어 진화와 발전의 모티브를 얻는다.

상생시대를 경쟁시대와 구분짓는 가장 큰 특징은 "시너지 효과의 일반화"에
있다.

"1+1=2"라는 등식은 무너졌다.

"1+1>2"라는 부등식이 보편화되고 있다.

합치면 더 커지는 사회다.

"1-1>2"도 가능하다.

나눌수록 커지는 역설의 세계다.

정보화 혁명이 상생시대를 앞당긴 도화선이다.

전통적 개념의 경쟁이 먹혀들지 않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들이밀었다.

산업사회의 상품은 사용하는 만큼 줄어든다.

나누는 만큼 자기 몫이 감소한다.

하지만 정보는 그렇지 않다.

다른 사람이 사용하더라도 내가 쓰는 데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나누고 확산시킬수록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인터넷에 떠있는 무수한 소프트웨어들이 그렇다.

미국의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토마스 제퍼슨은 이를 촛불에 비유했다.

"다른 사람에게 내 지식을 전해주더라도 내 지식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내 초의 불꽃을 가져가도 내 초의 불꽃이 줄어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히려 세상을 더 밝게 비출 수 있다"

여기에 사회의 분화와 기술의 융합화가 가세해 시너지 사회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서로 다른 기술들이 결합해 종래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신기원을 이룩해
낸다.

이질적인 시장들이 합쳐져 신개념의 마켓을 형성한다.

교육 정보 문화 유희 과학 인간이 경계를 무너뜨리며 어우러져 만든 새
세기적 시장이다.

이처럼 생존 패러다임이 경쟁에서 상생으로 바뀜에 따라 모든 행동의 기본
원리도 바뀌어야 한다.

과거 경쟁시대의 행동준칙이 "제로섬(zero-sum)"이었다면 상생시대의
행동강령은 "윈-윈(win-win)"이다.

대결이 아닌 화합이다.

국가건 기업이건, 개인이건 마찬가지다.

국가의 경우 전통적인 "국민국가"의 개념이 퇴색되고 "시장국가"로 전환
되고 있다.

국민국가에서는 자국이익의 보호가 최우선 관심사였다.

심한 경우 전쟁을 통하지 않고는 지켜낼 수 없었다.

시장국가에서는 더 큰 시장을 확보하는게 국가의 목표다.

시장을 빼앗기 위한 경쟁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시장을 키우기 위한 협력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이념과 역사를 접어둔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제블록화의 합종연횡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 국가 내부적으로도 분권화와 융합화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된다.

국가는 작아질 수 밖에 없다.

단순히 덩치를 줄이는게 아니다.

기능을 민간에 넘겨주어 시너지 효과를 이끌어내는 작업이다.

분업과 협력을 통해 정부는 행정의 효율화를, 기업은 사업기회의 확대를
꾀하는 것이 상생의 원리다.

그것이 세수를 늘리고 국가의 권위를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기업의 존재양식도 상생이 지고의 목표여야 한다.

미래기업의 성패는 주변 이해 당사자 집단과의 유기적 연관성에 달려 있다.

소비자와 근로자 주주 협력업체 정부 등과 윈-윈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면 생존하기 어려워진다.

경쟁기업끼리 메거 머저로 뭉치는 시대에선 경쟁자도 적이 아니다.

융합의 상대다.

노무라종합연구소는 이런 상생개념을 기업의 대차대조표에 반영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상생대차대조표"가 그것이다.

이 대차대조표의 차변에는 상생자산이 기재된다.

상생자산은 기업 내외부 이해관계자들과 해당기업간의 우호 정도를 의미
한다.

기업은 상생자산을 축적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투자자들도 이
대차대조표로 기업의 장래를 평가할 것이라고 노무라는 강조한다.

외형이 거대한 "큰 기업"보다 주주와 고객 근로자를 감동시키는 "좋은
기업"이 미래의 주도기업이라는 말이다.

상생기념에 입각한 소비자친화 사회친화 환경친화가 기업의 목표여야
한다는 제언이다.

따지고 보면 환란의 연원도 상쟁메커니즘에서 찾을 수 있다.

기업들을 빚덩어리로 만든 원죄는 경쟁자를 축출하고야 말겠다는 무리한
확장에 있었다.

새 빚을 대주며 묵은 빚을 받아낸 금융기관은 스스로를 부실채권자로
만들어 갔다.

"부채"와 "이자"의 악순환적 경쟁이 빚어낸 참극이다.

곤욕을 치르고 나서야 "빅딜"과 "합병"이라는 상생체제를 시도하는게
우리의 자화상이다.

새 시대의 생태계는 우리에게 새로운 생존논리를 던져 준다.

적자생존이 아니라 "화자생존"이라는 화두다.

[ 특별취재팀 = 정만호(국제부장/팀장) 육동인(사회2부) 임혁(국제부)
이의철(정치부) 조주현(국제부)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