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킹 달러' 시대의 종언
유로가 시장에 얼굴을 내밀자 마자 달러는 곤두박질 쳤다.
4일 국제금융시장이 열린 순서대로 시드니 도쿄 홍콩 프랑크푸르트로
이어지며 급락세를 계속했다.
예상했던 대로다.
유로 등장을 보는 미국내 식자들의 시각이 착잡할 수 밖에 없다.
세계유일의 기축통화인 달러를 앞세워 미국이 좌지우지해 온 세계경제
질서에 유로가 새로운 변수임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사실상 단일 경제권으로 변모한 유럽 11개국의 전체시장규모는 일본을 훌쩍
뛰어넘고 미국과 거의 맞먹는다.
이들은 통화의 힘에 상응하는 국제적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 것이다.
미국의 발언권은 유럽의 파워가 커지는 만큼 잠식당할 수 밖에 없다.
미국인들은 유로의 등장을 보면서 1백년전에 치렀던 전쟁을 상기한다.
세계 정치.경제의 헤게모니가 미국으로 넘어오게 된 전쟁이었다.
1899년 남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보어 전쟁과 미.스페인 전쟁이 그것이다.
이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함으로써 "유럽 파워"는 종언을 고하게 됐다.
세계 무대에서 미국의 부상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꼭 1백년이 지난 지금 미국사람들은 전혀 다른 장면을 보고 있다.
이번엔 미국의 승승장구가 아니다.
미국은 사실상 국제정치 무대에서 고립돼 있다.
이라크 등과의 "부적절한" 전쟁으로 유럽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게다가 국제통화기금(IMF) 등 "어용 국제기구"를 내세워 아시아의 외환위기
를 증폭시키는 등 세계경제를 전횡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달러에 대한 견제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막강한 유로랜드의 출범이 미국의 독선과 독주를 얼마나 견제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그동안 정치.경제적으로 미국의 우산속에 지나치게 경도돼 왔던
한국에 유로화의 출범이 결코 "남의 집 일"이 아닌 것 만은 분명해 보인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5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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