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좀 생각하고 삽시다] (1) ''적당히'가 사람 잡는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IMF 관리체제 전까지 우리는 앞만 보고 달려 왔다.
40여년간 그래 왔다.
이제서야 우리는 주변과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짬"을 내게 됐다.
그동안 소득수준은 세계 10위권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의식수준이나 행동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공공질서나 남에 대한 배려 등 공동체의식은 아직도 후진국 수준에 가깝다.
이제 우리는 세계 시민으로 거듭나야 한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은 시민의식과 행동방식을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국제사회에서 낙오자가 될수 있다.
본지는 새해를 열며 ''삐뚤어진 우리''를 되짚어보는 기획시리즈를 시작한다.
좌절된 선진국 진입에의 꿈을 되살리자는 취지에서다.
-----------------------------------------------------------------------
한국인은 "작은 것"이 남에게 주는 피해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음식점에서 깨끗이 씻겨지지 않은 컵을 내놓고도 손님의 항의에 미안해할
줄 모른다.
동료들 조차 "뭘 그런것 갖고 그러느냐"며 따지는 사람을 말리기 일쑤다.
전화기나 자판기가 동전을 삼켜도 쉽게 보상받을 길이 없다.
큰맘 먹고 전화라도 하려면 "째째한 사람" "시간이 남아도는 모양이군"
하는 비웃음을 각오해야만 한다.
산지 얼마 안된 물건이 고장나면 "국산이 그렇지..." 하고 차라리 자신을
탓하는게 정신건강상 좋다.
상가 진열제품이나 간판이 인도를 점유, 보행에 지장을 주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자신의 권리가 침해받은걸 시정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시도해 봐야 잘 안되기 때문이다.
작은 걸 따지면 "왕따"가 되는 세상.
잘못을 시정하기 위해 다소 목소리를 높이면 "조용히 합시다"라는 점잖은
견제에 부딪친다.
그렇지 않아도 신경 쓸일 많고 큰일이 산적해 있는데 어떻게 "하찮은 피해"
에 흥분하겠느냐다.
하지만 작은 일들이 바로 잡히지 않아 큰일을 그르친 경우를 우리는 너무나
많이 봐왔다.
성수대교와 삼풍사고도 따지고 보면 작은 일들을 가벼이 여겨 일어난 재난
이었다.
"한국인은 인정 많고 통이 크다고도 할 수 있으나 산업현장에서도 이런
행동양식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곤란하다. 일반적으로 근로자나 경영자
모두 작은 것에 무관심하고 괜찮다며 쉽게 지나친다. 부품들이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면 완성된 기계나 제품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내수산업
이라면 몰라도 국제화된 사회에서 경쟁하는 데에는 치명적이다"
절삭공구업체인 한국OSG의 와카마추 세이이치 전무(54)는 "아무리 사소한
분야라도 규정된 작업과정을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중요하다"면서 "그래야
조직에도 도움이 되고 나도 잘된다"고 지적했다.
따질건 따져야 한다.
"까다로운 고객"이 돼야 자기를 비롯한 다수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고객이 침묵하면 생산자는 무지속에 방심과 자만에 빠지게 마련이다.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잘못을 시정하지 않으면 소비자 운동을 벌여서라도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 한다.
한국제품은 마무리가 좋지 않다는 외국의 평가도 대부분 작은 것을 소홀히
하는 습관에서 비롯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일본인 수출 에이전트(54)의 얘기는 작은 것의 중요함을
잘 짚어주고 있다.
도로 방음벽은 양쪽에 알루미늄판과 철판을 쓴다.
중간에는 소음을 흡수하는 석면을 넣는다.
알루미늄과 철판을 접합시키기 위해서는 드릴로 구멍을 뚫고 리벳을 박아
고정시키면 된다.
아주 간단한 작업이다.
한국기업이 이 제품을 일본에 수출했으나 클레임이 제기됐다.
불량률이 무려 50%나 됐기 때문이다.
불량의 원인은 구멍을 뚫고 남은 부스러기에 있었다.
원래는 이 부스러기를 공기총으로 불어 깨끗이 제거한 다음에 접합시켜야
한다.
하지만 한국 공장에서는 이 작업을 생략했다.
부스러기들이 가운데 들어가면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기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판단해서다.
그러나 비가 오자 상황이 달라졌다.
바깥판과 달리 부스러기는 도금이 되어 있지 않아 비만 오면 즉각 녹이
슬고 녹물이 바깥으로 흘러나와 벌건 줄이 생겼다.
일본인들은 리벳자리에서 나온 녹물이 보기 싫어 규정대로 해달라고 요구
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방음벽이 소음만 차단하면 됐지 미관상 조금 보기
싫은게 무슨 상관이냐"며 클레임을 인정치 않았다.
"작은 것 봐주기"나 적당주의는 소속 집단이나 이웃뿐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 연쇄피해를 입힌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서울 양화대교에서 신촌으로 가는 길은 평소 그다지 막히지 않는다.
그러나 연희동으로 직진하려면 지하도로 가야 하는데 한차로밖에 없어 늘
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얌체족들은 줄을 서기 싫어 2차로로 달려와서는 지하도 입구에서 껌벅껌벅
한다.
그리고는 어느새 두 차선이 만들어진다.
이런 것은 결코 양보해줘서는 안된다.
그 뒤의 모든 차에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버스전용차로나 갓길을 달리는 차량탓으로 "도로의 양심"은 멍들고 있다.
99년 새해부터는 이런 것들과 과감히 결별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한 우리는 글로벌 시대의 이단자로 따돌림받을 수 밖에 없다.
< 김화주 기자 heewoo@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일자 ).
40여년간 그래 왔다.
이제서야 우리는 주변과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짬"을 내게 됐다.
그동안 소득수준은 세계 10위권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의식수준이나 행동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공공질서나 남에 대한 배려 등 공동체의식은 아직도 후진국 수준에 가깝다.
이제 우리는 세계 시민으로 거듭나야 한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은 시민의식과 행동방식을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국제사회에서 낙오자가 될수 있다.
본지는 새해를 열며 ''삐뚤어진 우리''를 되짚어보는 기획시리즈를 시작한다.
좌절된 선진국 진입에의 꿈을 되살리자는 취지에서다.
-----------------------------------------------------------------------
한국인은 "작은 것"이 남에게 주는 피해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음식점에서 깨끗이 씻겨지지 않은 컵을 내놓고도 손님의 항의에 미안해할
줄 모른다.
동료들 조차 "뭘 그런것 갖고 그러느냐"며 따지는 사람을 말리기 일쑤다.
전화기나 자판기가 동전을 삼켜도 쉽게 보상받을 길이 없다.
큰맘 먹고 전화라도 하려면 "째째한 사람" "시간이 남아도는 모양이군"
하는 비웃음을 각오해야만 한다.
산지 얼마 안된 물건이 고장나면 "국산이 그렇지..." 하고 차라리 자신을
탓하는게 정신건강상 좋다.
상가 진열제품이나 간판이 인도를 점유, 보행에 지장을 주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자신의 권리가 침해받은걸 시정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시도해 봐야 잘 안되기 때문이다.
작은 걸 따지면 "왕따"가 되는 세상.
잘못을 시정하기 위해 다소 목소리를 높이면 "조용히 합시다"라는 점잖은
견제에 부딪친다.
그렇지 않아도 신경 쓸일 많고 큰일이 산적해 있는데 어떻게 "하찮은 피해"
에 흥분하겠느냐다.
하지만 작은 일들이 바로 잡히지 않아 큰일을 그르친 경우를 우리는 너무나
많이 봐왔다.
성수대교와 삼풍사고도 따지고 보면 작은 일들을 가벼이 여겨 일어난 재난
이었다.
"한국인은 인정 많고 통이 크다고도 할 수 있으나 산업현장에서도 이런
행동양식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곤란하다. 일반적으로 근로자나 경영자
모두 작은 것에 무관심하고 괜찮다며 쉽게 지나친다. 부품들이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면 완성된 기계나 제품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내수산업
이라면 몰라도 국제화된 사회에서 경쟁하는 데에는 치명적이다"
절삭공구업체인 한국OSG의 와카마추 세이이치 전무(54)는 "아무리 사소한
분야라도 규정된 작업과정을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중요하다"면서 "그래야
조직에도 도움이 되고 나도 잘된다"고 지적했다.
따질건 따져야 한다.
"까다로운 고객"이 돼야 자기를 비롯한 다수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고객이 침묵하면 생산자는 무지속에 방심과 자만에 빠지게 마련이다.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잘못을 시정하지 않으면 소비자 운동을 벌여서라도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 한다.
한국제품은 마무리가 좋지 않다는 외국의 평가도 대부분 작은 것을 소홀히
하는 습관에서 비롯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일본인 수출 에이전트(54)의 얘기는 작은 것의 중요함을
잘 짚어주고 있다.
도로 방음벽은 양쪽에 알루미늄판과 철판을 쓴다.
중간에는 소음을 흡수하는 석면을 넣는다.
알루미늄과 철판을 접합시키기 위해서는 드릴로 구멍을 뚫고 리벳을 박아
고정시키면 된다.
아주 간단한 작업이다.
한국기업이 이 제품을 일본에 수출했으나 클레임이 제기됐다.
불량률이 무려 50%나 됐기 때문이다.
불량의 원인은 구멍을 뚫고 남은 부스러기에 있었다.
원래는 이 부스러기를 공기총으로 불어 깨끗이 제거한 다음에 접합시켜야
한다.
하지만 한국 공장에서는 이 작업을 생략했다.
부스러기들이 가운데 들어가면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기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판단해서다.
그러나 비가 오자 상황이 달라졌다.
바깥판과 달리 부스러기는 도금이 되어 있지 않아 비만 오면 즉각 녹이
슬고 녹물이 바깥으로 흘러나와 벌건 줄이 생겼다.
일본인들은 리벳자리에서 나온 녹물이 보기 싫어 규정대로 해달라고 요구
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방음벽이 소음만 차단하면 됐지 미관상 조금 보기
싫은게 무슨 상관이냐"며 클레임을 인정치 않았다.
"작은 것 봐주기"나 적당주의는 소속 집단이나 이웃뿐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 연쇄피해를 입힌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서울 양화대교에서 신촌으로 가는 길은 평소 그다지 막히지 않는다.
그러나 연희동으로 직진하려면 지하도로 가야 하는데 한차로밖에 없어 늘
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얌체족들은 줄을 서기 싫어 2차로로 달려와서는 지하도 입구에서 껌벅껌벅
한다.
그리고는 어느새 두 차선이 만들어진다.
이런 것은 결코 양보해줘서는 안된다.
그 뒤의 모든 차에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버스전용차로나 갓길을 달리는 차량탓으로 "도로의 양심"은 멍들고 있다.
99년 새해부터는 이런 것들과 과감히 결별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한 우리는 글로벌 시대의 이단자로 따돌림받을 수 밖에 없다.
< 김화주 기자 heewoo@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