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충영 < 중앙대 국제대학원장 >

최근 몇년사이 IMF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들 가운데서 양질의 노동력과
우수한 인간자본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로 세계의 석학들은 예외없이 한국을
지목한다.

천연 자원의 보유가 경제적 잠재력으로 평가되는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 한 나라가 얼마나 고급인력을 보유하고 있는가가 경제력 평가의
절대적 기준이 되고 있다.

노동력과 자본의 투입량이 늘어갈수록 요소 생산성은 궁극적으로 하락한다는
수확체감의 원리는 경제이론에서 하나의 법칙으로까지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내생적 성장이론은 인간자본, 금융의 효율적 중개기능, 지식
스톡의 확산을 통하여 그동안 금과옥조로만 여겨오던 수확체감의 법칙을
뒤엎고 수확체증까지도 가능함을 시사하고 있다.

IMF관리체제 이후 우리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4대 부문에서 진행하고
있다.

금융기관과 기업에 응축되어 있는 각종 부실을 제거하기 위하여 감량경영과
고용조정을 실시하고 있다.

그 결과 실업자는 사상 최대로 발생하여 1백50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들 실업자 가운데는 단순 노무직과 저급 기술직 이외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의 최고 경영자, 금융기관의 임원과 중견 관리자, 정부 출연 연구소의 박사들
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5대 그룹의 경우도 경영인 30%가 퇴출된다.

이들은 반도체, CDMA, 고분자, 첨단 가전제품 등의 분야에서 30여년동안
경영과 기술혁신을 주도하였고 국제 시장에서 한국수출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던 인간자본들이다.

이들은 굶주림의 세월을 경험하였고 개발연대에는 밤잠을 자지 않을 정도로
현장을 누볐으며 수출주도와 기술혁신을 주도하였던 세대이기도 하다.

한국적 개발 에토스와 해외시장개척의 노하우를 체감한 소중한 경영자원
이다.

동남아와 중남미의 많은 국가들은 자원은 풍부하되 고급인력이 부족하여
성장의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생애를 통하여 인간자본에 투입된 비용은 양육과 교육에서부터, 그리고
무엇보다도 30여년에 걸친 소중한 기업 현장 경험을 비용으로 환산하면
엄청난 규모에 이른다.

이러한 인간자본을 항구적으로 퇴장시키는 것은 엄청난 국가적 손실임에
틀림없다.

필자는 2주전 정부 외자유치단의 일원으로 미국 서부지역을 순방한바 있다.

실리콘밸리의 벤처 캐피털과 벤처 비즈니스는 바로 인간자본의 공급과 수요
가 만들어낸 시장경제의 정수였다.

스탠퍼드대학에서 전자공학을 30영년간 연구와 강의를 한 저명교수, 기업체
사장을 역임한 경영자, 그리고 공인회계사로 다년간 활약한 3인의 파트너가
조합을 결성하였다.

이들의 전문성과 이노베이션을 신뢰하는 일반 투자자들이 위험은 따르지만
그에 따른 고수익을 겨냥하여 자금동원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 "에인절 펀드"는 신기술 신제품을 개발하는 벤처기업인에 사업자금을
공급하여 첨단산업의 등장을 선도하고 있다.

정부는 21세기 산업구조고도화의 기수로, 그리고 IMF관리체제 이후 한국경
제의 새로운 활로를 벤처시대의 개막에서 찾고 있다.

벤처는 창의적 아이디어로 제품을 만드는 벤처기업과 이를 자금으로 뒷받침
하는 창업투자회사들이 공동으로 만들어내는 합작품이다.

구조조정의 와중에서 퇴출되는 기업의 최고 경영자, 금융부문에서 퇴출되는
고급 인력, 그리고 대학과 정부출연연구소의 연구실이 네트워킹이 될 수 있는
여건조성에 정부는 앞장서야 한다.

효과가 의문시되는 일부 실업대책 재원을 "인간자본 관리기금"으로 설정하여
이미 퇴출되었고, 앞으로 퇴출될 인간자본이 벤처기업과 벤처 캐피털에 투신
하거나 금융기관의 파트타임 신용평가요원으로 활약할 수 있는 기반 조성을
서둘러야 한다.

부실을 도려내는 작업이 구조조정의 필요조건이라면 그에따라 퇴출되는
고급인력을 활용하여 새로운 산업의 지평을 열고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일은
구조조정의 충분조건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