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인 < 고려대 교수. 산업공학 >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결과가 발표됐다.

올해 수능은 작년보다 평균이 27점이나 올라갈 정도로 쉬웠음이 밝혀졌다.

이제 수능은 변별력을 잃고 자격시험으로 그 기능을 대체할 전망이다.

따라서 논술시험이 입시에서의 합격.불합격을 크게 좌우하게 됐다.

수험생들은 끝까지 논술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이제 수험생들이 논술시험에 들이는 노력 이상으로 각 대학은 논술채점에
고민할 때다.

논술시험은 문제의 주제를 파악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종합 정리
하여 체계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을 평가한다.

객관식, 선다형 수능시험의 단점을 보완하는 좋은 방법이다.

논술성적의 향상은 단기적인 과외를 통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일찍부터 꾸준한 책읽기와 글쓰기만이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논술은 고등학교 교육정상화에도 좋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실제로 수능시험을 치르고 들어온 학생과 그렇지않은 학생들 간에는 우선
보고서작성에서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이 대학교수들의 평가다.

논술시험의 이러한 장점에는 이론이 없다.

따라서 혹자는 논술시험이 합격.불합격에 큰 영향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
다.

그러나 문제는 채점이 공정하고 믿을 만하게 이루어지느냐이다.

논술시험은 비교적 역사가 깊으나 아직도 채점에서 허술해 상당한 보완이
필요함을 느낀다.

대학 정문에 엿을 붙여놓고 비는 학부모는 채점위원을 잘 만나기를 기원해
야 한다는 말도 있다.

공정성과 신뢰성을 갖추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하고, 출제문제에 전문
식견을 가진 채점위원을 선정하는 등의 각종 노력에도 불구하고 채점 결과는
크게 차이가 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같은 답안지라 할지라도 채점위원의 주관이 다르니 똑같은 점수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차이가 합격.불합격을 좌우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러면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모의고사의 실제 채점결과를 통해 알아보
자.

같은 답안지를 서로 다른 채점위원이 두번씩 채점한다고 할때, 두 점수간의
상관계수가 0.7이라면 논술 채점으로는 두 채점위원간에 일관성이 상당히
있는 편이다.

예를 들어 어떤 답안지에 채점위원 A는 71점을 주고 있는 반면에 채점위원
B는 67점을 주고 있고, 채점위원 A가 80점을 주고 있는 답안지들에 채점위원
B는 73점에서 89점 사이로 폭넓게 점수를 주고 있다.

이보다 편차가 심한 경우도 흔하다.

각 대학은 이러한 사실을 더 이상 덮어두지 말고, 과학적으로 철저히 분석
해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많은 대학에서 모집단위를 광역화함에 따라 경쟁 학생들을 주관이
서로 다른 수십명의 채점위원들이 같이 채점하게 돼 문제가 심각해진다.

그러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첫째 연구위원회의 가동, 워크숍의 개최, 신중한 채점자 선정, 채점 보조
도구의 활용, 충분한 채점기간 등의 제도적인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채점결과는 통계적으로 철저히 분석해 적절한 점수의 폭(표준편차)을
결정해야 한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채점 결과를 A+,A,B+,B... 등으로 등급화하는 것을
권장하고 싶다.

대학에서 교과목의 평점을 내는 이 방법이 교수들에게 보다 익숙한 방법일
것이다.

다음에는 수능과의 상대적 영향도를 결정한다.

예를 들면 수능 분포와 논술 분포의 폭을 4대1, 2대1, 1.5대1 등으로 하나
를 결정한다.

그리고 각 채점위원의 분포를 이에 맞추어 표준화한다.

이러한 복잡한 통계적 절차와 계산은 컴퓨터가 자동적으로 해줄 수 있다.

논술은 이해력 논증력 창의력 표현력 등을 키우는 좋은 제도다.

그러나 같은 답안지가 큰 폭으로 서로 다르게 점수를 받아서는 논술이라는
전형 요소는 설 땅을 잃는다.

이제 대학은 권위의식에서 탈피해 합격.불합격 결정의 권한을 지극히 신중
하고 공정하게 행사해야 한다.

단 몇분간의 채점이 수년간의 노력을 평가해 수십년간의 수험생 인생을
좌우한다.

대학에서는 철저한 연구로 억울한 수험생을 최소화 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끝으로 수능 점수의 차이가 더욱 작아진 금년에 논술 점수의 차이를 크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