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석 < 삼성경제연구소장 >

한국경제가 일단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는 벗어난 것 같다.

지난 여름까지만 해도 이대로 가다간 감속정도가 아니라 추락하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으나 이젠 저공운항은 가능하겠구나 하는 정도까지
되었다.

그러나 아직 정상운항 상태로 들어간 것은 아니다.

IMF졸업을 위해 필요한 구조조정 작업은 아직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그러나 경제는 살아있는 생물과 같아 나름대로 새로운 적응력을 보이고
있다.

IMF체제 1년동안 그 가혹한 환경속에서도 살아남아 새싹을 틔우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의 무서운 생명력이다.

이 좌절을 모르는 생명력이야말로 한국경제의 가장 튼튼한 펀더멘털
(Fundamentals)인지 모른다.

같이 IMF지원을 받았지만 태국 인도네시아 멕시코와는 비교가 안된다.

비록 엉성하지만 이토록 단시일안에 구조조정의 방향을 잡아 시작한
나라도 드물 것이다.

미국이나 IMF가 한국을 IMF 처방의 성공적 시범장으로 삼고자 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IMF처방이나 시장경제에 대해 한국만큼 저항이 적은 나라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것인데도 마치 새로운 구세의 신앙처럼
받아들이는 풍조조차 있다.

얼마나 포교하기 좋은 땅인가.

한국경제의 생명력을 상징하듯 각종 경제지표들이 조금씩 솟아나오고 있다.

지난 여름까지만 해도 금년에 이어 내년에도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었으나
최근엔 사정이 좋아져 1.5%정도의 성장으로 바뀌었다.

밖의 사정이 좋아지는데다 안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년에 1.5%성장이 된다 해도 경제규모나 1인당 GDP는 96년
수준이어서 불황탈출의 감은 느낄 수가 없을 것이다.

달러기준 소득은 93년 수준으로 후퇴한다.

수출 민간소비 설비투자 건설투자 등도 당초 예상보다 좋아지고 있다.

수출은 금년의 감속에서 내년엔 증가로 돌아서고 반도체 유화 철강 건설
등은 회복세가 점쳐지고 있다.

특히 설비투자의 대폭 감소추세가 멈추고 민간소비가 살아나는 것은
경제회생의 좋은 신호다.

산업생산이나 재고율 제조업가동률 등은 지난 10월부터 개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외국인 투자도 여름까지 한산하다가 10월부터 들어오기 시작하여 11월엔
무려 14억달러 가까이 들어왔는데 그것이 요즘 증시활황에도 연결된것 같다.

환율 금리도 안정세를 보여 경제회복을 위한 좋은 바탕이 되고 있다.

거시지표로 볼때 경제는 분명히 좋아지고 있고 더 좋아질 요인도 있지만
아직 추진력을 갖춘 단계는 아니다.

지뢰밭같은 위험요인이 잔뜩 있다.

바깥 여건은 돌발사태가 없는한 한국에 좋은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문제는 안인데 가장 걱정스러운 것이 사태를 너무 낙관적으로 보거나
다소 좋아지는 것을 너무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이다.

낙관적 분위기를 만든다는 것이 한걸음 삐끗하면 긴장을 와해시켜 지금부터
본격화해야 할 구조조정 노력을 원점으로 돌릴 수가 있다.

모두들 개혁을 외치면서도 코스트 분담엔 저항하고 있는데 "좋아진다"
소리를 너무 하면 누가 고통을 감수하려 하겠는가.

벌써 그런 조짐이 일어나고 있다.

둘째는 작은 성과에 취해 세심한 정책배려를 소홀히 하는 위험이다.

이제 겨우 경제의 새싹만 보일뿐 연약하기 짝이 없는데 덜컥수가 나올까봐
걱정된다.

지금 금융.기업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어 정말 전문가적 기술과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대기업이라 해도 아슬아슬한 자금운용을 하고 있으며 지금 시장의 힘이
정말 무섭다.

그런데 무슨 대출중단이니 버릇고치기니 하는 거친 말들이 자주 나오는데
잘못이다.

작년초 한보부도 내듯 의도안한 실수라도 하면 뒷수습이 간단치 않을
것이다.

셋째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고 하나 실업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고
구조조정에 따른 사회갈등은 당분간 고조될 수밖에 없다.

세련된 정치를 통해 인심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무슨 사태로 번질지
모른다.

경제가 최악에 있을 때보다 한고비 넘겨 공포와 긴장이 풀릴때가
더 위험하다.

한국경제의 새싹이 보이기 시작했으므로 그냥 분위기를 띄우기보다는
새싹을 한꺼번에 죽일 수 있는 차가운 바깥바람을 막는데 에너지를
더 모아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