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이 미국을 뒤흔들었던 지난주 월가는 대활황이었다.

다우존스 주가지수가 연 사흘 상승한 것을 비롯 채권가격과 달러값이 함께
치솟았다.

이른바 "트리플 강세" 현상이다.

미국 대통령이 1백30년 만에 하원으로부터 탄핵을 당하는 등 워싱턴 정가를
자욱하게 뒤덮었던 "먹구름"과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이었다.

최악의 정치 위기를 무색케 한 "전천후 호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라크
공습이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지난 16일 "탄핵 비껴가기"의 마지막 승부수로
띄웠던 전격적인 이라크 공습이 대형 호재로 작용했다.

단적인 예가 공습 주역인 토마호크 미사일 제조업체인 레이시언사의 주가
폭등이다.

이 회사의 주가는 공습 첫 날에만 18.7%포인트나 급등했다.

주식 사재기에 나선 투자자들의 산술은 간단했다.

미국이 사흘동안의 이라크 공습에 퍼부은 미사일 수는 최소 3백~5백기였다.

레이시언사의 연간 토마호크 미사일 생산 능력은 1백기 남짓에 불과하다.

3~5년치 재고가 단 사흘 만에 깨끗이 소화된 셈이다.

월가의 활황에는 모처럼 조성된 군사적 긴장 덕분에 다른 첨단 군수업체들
도 덕을 볼 것이란 기대까지 가세했다.

그 여파로 아시아 외환 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비틀거렸던 보잉 등 다른
중장비 업체들의 주가도 동반 폭등세를 나타냈다.

미국 경제계 일각에서는 이 현상을 두고 "군산 복합체의 위력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정치-경제를 주무르는 최고 실세 집단이 바로 군산 복합체임이
다시한번 확인됐다는 얘기다.

이라크에 대한 전격 공습을 결정한 장본인은 물론 클린턴 대통령이지만
워싱턴 정계에 광범위하고도 막강한 커넥션을 구축하고 있는 미국 군수업계
의 로비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겠느냐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달 26일 미국의 군수산업이 극심한 불황속에
사양화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보도했었다.

이라크 공습이 결정되기 보름여전의 일이다.

록히드 마틴사의 F-16전투기, 레이시언사의 미사일, 보잉사의 AWACS 공중
조기경보기 등의 판매 실적이 전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내용이었다.

최대 고객인 아시아 국가들의 외환 위기로 수요가 뚝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기준으로 세계 무기 시장의 45%를 차지하며 세계 최대 무기 수출국
의 아성을 쌓아온 미국 군수업체들이 어느 정도의 위기 의식을 느꼈을
것인지 짐작할 만하다.

"죽음의 상인"으로 불리는 미국 군수업체들이 "비즈니스"를 위해 펼치는
로비는 집요하기로 유명하다.

클린턴 대통령이 이라크 공습을 단행하자 "탄핵을 모면하려는 꼼수"라고
비판하면서도 "공습 자체는 전폭 지지한다"고 강조했던 밥 리빙스턴 하원
의장 내정자(19일 의장직 포기)가 군수업계의 대표적 후견인중 한사람
이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리빙스턴은 지난 96년 하원 세출위원장 재직시 국방비의 대폭 삭감을
막아준 댓가로 록히드 마틴, 텍스트론 등 군수업체로부터 20만달러가 넘는
정치 자금을 제공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격적인 이라크 공습으로 이런 군수업체들에 숨통을 틔어준 클린턴 대통령
이 정작 자신의 하원 탄핵을 막지 못한 것은 아이러니다.

이번 공습으로 미국은 90개 이상의 이라크내 "목표물"에 타격을 가하는
전과를 올렸다지만 68명의 무고한 이라크인들이 목숨을 잃는 결과를 빚었다.

무엇보다도 미국은 지난 91년 걸프전 발발 이후 지금까지 대 이라크 작전에
79억달러의 국방비를 쏟아 부었다.

애매한 인명과 미국 국민들의 혈세를 빨아들인 이라크와의 "8년 전쟁"에서
유일한 승자는 미국 정부도, 이라크도 아닌 미 군산복합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