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문(54)보람컨설팅연구원장.

초등학교 4학년 중퇴가 학력의 전부인 그는 산업교육분야의 명강사로
통한다.

지난해 1월에는 컨설팅연구원을 설립했으며 보람시민대학도 운영중이다.

기업체마다 교육비를 줄이는 불경기임에도 이틀에 하루는 외부강연을 위해
전국을 누빈다.

한글맞춤법도 제대로 모르던 그가 어떻게 대학교수들이나 가능한 기업강사로
활동할 수 있었을까.

그는 생과 사의 갈림길을 오갔던 절박한 경험이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인생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방영됐을 정도로
파란만장하다.

돈이 없어 학교를 중도에 포기하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던 17살 청년.

봉제공장, 식당, 철공소를 전전하던 젊은 시절.

보증금 10만원에 월세 2만원의 단칸방생활.

생활고를 이기지 못한 아내의 가출.

자살을 결심하고 찬 바람이 부는 북한강 주변을 배회하던 기억.

그런 그가 다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 것은 유명강사를 태우고 다니는
렌트카운전사를 시작하면서부터.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차를 몰아야했기에 몸은 고달펐지만 그에게
인생을 새롭게 보는 기회가 주어졌다.

불혹을 간넘긴 나이(그당시 42세)에 그는 사회저명인사들의 강의를 들으며
그동안 몰랐던 세상을 하나씩 깨우쳐갔다.

그는 강의를 들으며 내용을 노트에 일일이 받아 적었다.

이렇게 기록한 강의내용만 1천여편.

그에게 강사로서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지난 94년.

대기업 교육담당자들의 모임인 한국인사관리협회로부터 체험학습을 주제로
강의를 해달라는 초청을 받은 것.

거절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기회라고 판단한 그는 자신의 인생과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후 기업체 교육담당자들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강의요청이 폭주했다.

1천여명의 강사를 태우고 다니며 보고 들었던 말들이 술술 튀어나왔다.

더이상 렌트카 기사일을 할 필요도 없어졌다.

책도 한 권 냈다.

작지만 집도 한 채 장만했다.

그는 자신의 최고 재산을 부지런함이라고 말한다.

그는 아직 화투나 포커는 커녕 술이나 담배, 심지어 바둑이나 장기도 두지
못한다.

그만큼 자신에게 엄격하다.

정원장의 장래희망은 대학설립.

전북 진안지역에 부지매입까지 마쳤다.

정원장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IMF.

IMF체제가 기업에게는 가장 혹독한 선생이기 때문이다.

강의요청도 절반가량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는 IMF를 이기는 치료법은 스스로 깨쳐나가야한다고 믿는다.

IMF는 나태의 병을 고치는 의사라는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노숙자에 대한 무료급식조차 반대한다.

"새벽에 내린 서리가 해충을 죽이는 법입니다.

IMF관리체제는 외국에서 돈을 빌려오는 방법으로는 결코 극복할 수
없습니다.

시련을 스스로 극복하려는 자세만이 유일한 답입니다"

정원장이 주장하는 "IMF해결법"이다.

(02)243-5449

< 이심기 기자 sg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