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 < 외교통상부 조약국장 >

한.일 어업협정에 대한 국회의 비준 동의 절차를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일부 인사들이 사실 관계나 법리면에서 틀린 주장을 함에 따라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새로운 한.일 어업협정으로 인하여 독도와 그 주변 12해리 영해가 영향을
받는 것도 없으며 일본에 내준 바다도 없다.

첫째, 이번 어업협정은 한.일 양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을 대상으로
어업문제만을 다루고 있다.

유엔해양법협약은 EEZ를 "영해 밖에 인접한 수역"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일 양국의 국내법도 각기 EEZ는 영해가 제외되는 것으로 명시하고 있어
영해는 이 협정의 대상이 아니다.

한.중 어업협정이나 일.중 어업협정에서도 EEZ를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규정하면서 영해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지만 EEZ의 국제법적 국내법적
정의에 따라 영해는 당연히 EEZ수역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둘째, 중간수역은 공동관리수역이 아니다.

공동관리수역이라 함은 해당수역에 대한 규제조치를 공동으로 결정하거나
공동으로 집행하는 수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해 중간수역에서는 이러한 요소가 없다.

한.일 양국이 각기 자기나라 어선만을 대상으로 규제조치를 정하고 단속
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공해에서의 자원관리방식과 유사하다.

동해 중간수역은 일.중간의 "잠정조치수역"이나 한.중간의 "잠정조치수역"
또는 "과도수역"과는 관리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들 잠정조치수역이나 과도수역에서는 공동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공동관리
를 하며 위반조업을 하는 상대방국 어선에 대해 현장에서 주의환기도 할 수
있다.

셋째, 이번 협정은 어업에 관한 사항만을 다룰뿐 영유권 문제와는 무관하다.

이를 더욱 분명히 하기 위하여 협정 제15조는 어업에 관한 사항이외의
국제법상 문제에 관하여 각 체약국의 입장을 해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우리의 고유영토로서 우리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고 분쟁의 대상도 아니다.

독도문제와 관련하여 일본 패전후 1946년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내린 지령
SCAPIN 제677호 및 제1033호가 거론되기도 하나, 독도는 이 지령이 있기
훨씬 이전부터 우리의 고유영토였다.

넷째, 어업협정에 독도의 이름도 좌표도 표시되지 않아 망각된 것이 아니냐
는 걱정도 있다.

그러나 독도와 그 영해는 협정대상수역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표기할
필요가 없어서 표기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일.중 어업협정에 소위 북위27도 이남수역이라는 것이 있다.

이 수역이 바로 동해 중간수역과 성격이 같은데, 여기에 센가쿠섬을 포함하
여 여러개의 섬들이 들어가 있다.

이들 섬의 이름이나 좌표도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하여 이들 섬들의 영유권에 어떠한 영향이 생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섯째, 독도가 자체의 EEZ를 가지는지 여부 및 한.일간 어떠한 EEZ경계선에
합의할 것인지의 문제는 앞으로 해양경계획정 협상에서 다룰 문제로 어업협정
과는 별개의 것이다.

해양경계획정 문제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거나 인접해 있는 모든
나라들이 부딪치고 있는 가장 어려운 문제중 하나로서 이에는 고려해야할
요소가 매우 많다.

시간이 걸리는 해양경계획정에 합의하기 이전에 우선 시급한 어민들의
조업문제부터 해결하기 위하여 어업협정부터 체결하는 사례가 흔히 있다.

일.중 어업협정이나 한.중 어업협정도 그러한 사례에 해당한다.

"일본은 독도를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EEZ기점으로 선포하고 있기 때문
에 독도주변에 우리의 EEZ가 없어졌다"고 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는 해양법
협약과 한국 및 일본의 국내법을 전혀 모르고 하는 얘기다.

어업협정 체결여부와 상관없이 독도주변에는 우리의 EEZ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또한 해양경계에 관하여 당사국간 합의에 이르기 전에는 어느 일방의 기점
주장은 전혀 의미가 없다.

새로운 한.일 어업협정은 지난 2년반 동안 공식.비공식적으로 30여차례
이상의 회담을 거치면서 실로 대단히 신중히 처리된 것이다.

어업협정으로 인하여 독도와 그 영해가 어떠한 영향을 받아서도 안된다는
것이 애초에 가장 중요한 전제였음을 밝혀둔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