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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 경제백서-기업] 조기 구조조정 : '기업분할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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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 구조조정의 핵심은 사업구조를 다시 짜는 일이다.

    리스트럭처링 성공의 열쇠는 핵심사업을 정해 회사역량을 집중하고
    비수익성 사업은 정리하는 사업구조조정이 쥐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방법이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게 사업매각.

    그러나 팔지않고 사업을 떼내는 기업분할도 사업 구조조정 방법으로
    애용되고 있다.

    스핀오프, 스플리트 오프, 분사등이 대표적인 사업분할 방법이다.

    <> 스핀오프 (Spin-Off):특정사업을 자회사로 분리, 신설하는 방법이다.

    떼낼 사업을 정해 자회사로 분리시킨뒤 신설회사의 주식을 모회사
    기존주주들의 지분율에 따라 배부한다.

    모회사의 기존주주가 신설 자회사의 주식도 소유하게 되는 셈.

    미국에서는 자산규모 축소를 통한 사업구조조정 방법으로 애용된다.

    스핀오프에 성공한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미국 ITT를 들 수 있다.

    ITT는 사업다각화를 벌인 결과 90년대 중반 쉐라톤호텔, 렌터카 사업인
    아비스(Avis)등 자회사가 무려 2백50개에 달했다.

    이들 사업을 효율적으로 경영하기 위해 지난 95년 보험을 위주로 하는
    ITT 하트폴드, 산업제품 제조를 위주로 하는 ITT 인더스트리, 통신과 호텔을
    위주로 하는 ITT 코프 등 3개 회사로 분리했다.

    <> 스플리트오프 (Split-Off):기업분할 혹은 주식상환형 분할이라고 한다.

    특정 사업을 자회사형태로 떼낸 뒤 이 주식을 갖고 싶어하는 모회사
    기존주주에게만 주식을 교환하게 해 준다.

    주주들은 모회사나 자회사중 1개 회사만 선택, 주식을 보유하게 된다는
    점이 스핀오프와 다르다.

    결과적으로 모회사와 분리되는 셈이다.

    스플리트 오프를 활용한 기업으로는 GM을 들수 있다.

    GM은 본업인 자동차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지난 96년 스플리트 오프를 실시,
    정보통신 자회사 EDS를 분리시켰다.

    <> 사내 분사:신속한 의사결정과 고용유지를 위해 회사자산 일부를 분리,
    1백% 자회사 형태로 유지하는 방식이다.

    독립법인으로 분리하지 않고 "회사내 회사"형태로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스플리트 오프를 통한 사업구조조정의 사전 단계로 활용되기도 한다.

    요즘 국내기업들이 가장 많이 실시하는 사업구조조정 방법.

    해외기업중에는 소니가 실시했다.

    소니는 각 사업부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 94년 사내분사를 실시,
    기존 19개 사업본부를 8개로 축소.통합했다.

    이들 사업본부는 마치 별개의 회사처럼 운영, 스피드 경영과 효율적인
    운영이라는 성과를 얻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9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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