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이회창 총재가 8일로 취임 1백일을 맞는다.

이 총재에게 지난 1백일은 야당총재로서 가장 혹독한 시련기였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정치생명을 위협한 "세풍 및 총풍사건", 정치인 사정, 소속 의원 및
광역.기초단체장 탈당, 당 지도부 구성을 둘러싼 지역 및 계파의 반발 등이
잇따른 것이다.

지금도 자신을 직접 겨냥한 "총풍사건"이 재연되고 있는데다 "3자 주류
연대"의 와해와 비주류세력들의 "반이회창"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 총재는 그동안 여권의 "이회창 배제론"에도 불구, 지난달 10일 김대중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마주앉음으로써 정국운영 파트너로서 인정을 받았고
당내에서도 지난달 26일 전국위를 통해 "이회창 체제"를 구축하는 성과도
거뒀다.

하지만 정치 지도력 측면에서 일정한 한계를 드러낸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김윤환 전부총재의 "반 이회창" 움직임이 그 단적인 예로 꼽힌다.

새롭고 강력한 야당을 만든다고 하면서 당내 비주류는 물론 주류마저
포용하지 못해 스스로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우"를 범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줄곧 "독선"의 이미지가 따라 붙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 정국 대처 과정에서 나름대로의 전략적 틀속에서 일관된 모습을 보이기
보다는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식으로 대응, 오히려 정국상황을 꼬이게 했다
는 비판도 있다.

정기국회 정상화, 총재회담 등 정국대치 해소를 위한 여야 협상 과정에서
총무회담 등의 합의내용 번복을 되풀이했던 것이 이를 반증해 주고 있다.

특히 전국위 연설에서 "중산층.소외계층을 대변하는 정당"이라는 당 기본
노선과 관련된 중대문제를 필요에 따라 쉽게 언급하는 태도나 최장집 교수
이념논란 과정에서 충분한 검토없이 졸속 대처한 점 등은 그의 "한계"로
거론되기도 한다.

< 한은구 기자 toh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