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숙 주부 >

나는 결혼생활 5년째인 전업주부다.

IMF체제전만 하더라도 우리 세식구는 크게 부족함없이 단란한 생활을
꾸려갈 수 있었다.

주위로부터 자수성가했다는 소리를 들었던 남편은 지난해 11월전까지만해도
동대문시장에서 작은 신발가게를 운영하며 한 가정의 가장 역할을 단단히
해냈다.

월평균 3백여만원의 수입은 저축까지 하며 살 수 있는 넉넉한 액수였다.

내집마련의 계획도 착착 진행됐다.

그러나 IMF체제는 우리 가정의 모든 것을 한순간에 앗아갔다.

IMF한파가 닥치면서 남편 가게는 파리가 날릴 정도로 매출이 뚝 떨어졌다.

게다가 남편이 친구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감당하기 힘든 빚더미까지
안게 됐다.

어쩔수없이 가게 보증금과 당시 살고 있던 집(서울 면목동)의 전세금을
빼내 빚의 일부를 갚은뒤 지난해 11월 구리시로 이사했다.

친구의 소개로 얻은 집은 보증금 없이 월세 10만원의 단칸 사글세방이었다.

사글세방은 IMF한파보다 더 추워 겨우내 세식구가 덜덜 떨며 밤을 지샐
정도였다.

또 추위보다도 더 두려운 것은 앞으로 살길이 막막하다는 것이었다.

남편의 취업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4~5개월을 보내다 올 4월에야 겨우 남편이 직장을 갖게 됐다.

밤에 나가 일하는 직업이지만 요즘같은 취업난속에서는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렵사리 직장은 얻었지만 수입은 예전의 3분의 1수준인 1백만원정도
였다.

나는 그때부터 "어떻게 살아야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됐다.

일단 생활을 꾸려나가면서 남은 빚을 갚아야 했다.

그리고 사글세방 신세를 면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저축도 해야 했다.

그러기에는 월 1백만원 안팎의 수입은 너무 부족했다.

그렇다고 IMF를 원망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알뜰살림을 꾸려나가기로 하고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다.

가계부를 쓰면서 가장 먼저 목표로 잡은게 생활비를 60만원이하로 묶는
것이었다.

60만원의 생활비는 세식구 식비와 사글세 전기세 등을 합한 지출액의 최저
한계선이었다.

지난 10월의 가계부 결산내용을 보면 사글세 10만원, 전기료 1만9천4백10원,
전화료 6천7백40원, 연료비 7만6천4백원 등 고정지출 20만2천5백50원에
식비와 잡비 40만4백원을 합쳐 60만2천9백50원정도였다.

이렇게 살다보니 자연히 IMF체제이후 새 옷은 한벌도 살 수 없었다.

양말도 꿰매 신을 정도였다.

세살난 딸아이의 옷은 친구들로부터 얻어다 입혔다.

외출도 거의 하지 않았고 친구들도 만나지 않았다.

단 한푼이라도 돈이 나가는 일은 하지 않은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식료품을 조금이라도 싸게 사기 위해 매일같이 인근 백화점의 시간대
한정판매장을 찾았다.

물론 백화점 문도 열리기 전에 달려가야 하는 열성이 필요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백화점이 팔다 남은 식료품을 떨이판매할때까지 기다렸다
사기도 했다.

이같은 노력으로 식비를 절반이하로 줄일 수 있었다.

이렇게 절약하고 또 절약하는 생활 덕에 1백만원 안팎의 수입으로도 버텨
나갈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더 아껴 남은 빚을 하루빨리 갚은뒤 저축을 해야겠다는
의욕도 생겼다.

몇년뒤에는 다시 전셋집이라도 마련해볼 생각이다.

IMF체제이후 갑자기 들이닥친 환경의 변화는 하나부터 열까지 어려운 상황
뿐이었지만 이제는 참고 견딜만하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한푼두푼 모아 다시 일어서야겠다는 각오와 자신감도 생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