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MF 새 풍속도 ]

IMF체제 1년은 대한민국의 시계를 10년이나 뒤로 돌려 놓았다.

1만달러를 오르내리던 국민소득이 10여년 전인 5천~6천달러대로 뚝 떨어진
게 단적인 예다.

"급속한 과거로의 회귀"는 우리의 일상생활과 사고방식등을 송두리째 바꿔
놨다.

가히 IMF가 몰고 온 "문화 쇼킹"이라 할 만하다.

<> 아이는 싫어요 =신혼부부들의 "아이 기피현상"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봉급 삭감과 불투명한 장래가 출산 거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80년대 70% 대였던 피임실천율이
지난해 80%를 넘어섰다.

이는 지난 60년대 가족 계획사업이 시작된 이후 최고치이다.

<> 콘돔이 잘 팔린다 =아이를 기피하는 풍조가 확산되면서 피임기구인 콘돔
제조업체들이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콘돔 업체마다 올들어 지난해보다 평균 30% 이상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을
정도다.

<> 평생직장은 옛날 얘기 =IMF체제는 "정년"이라는 단어를 우리 사회에서
영구히 추방했다.

그동안 "철밥통"으로 여겨지던 공무원들에게도 평생직장은 과거의 향수일
뿐이다.

평생직장이라고 여기던 직장에서 쫓겨나는 직장인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하루에 생겨나는 실직자가 무려 1천8백여명.

이대로 연말까지 가면 실직자가 2백만명을 넘어서는 "실업대란"이 올 전망
이다.

<> 바빠진 헤드헌터 업체들 =직장이 불안하다보니 더 좋은 직장으로 옮기
려는 직장인들도 급속히 늘고 있다.

이 때문에 헤드헌터 업체들이 몰려드는 구직자들로 IMF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헤드헌터 업체인 서울서어치 관계자는 "하루 1백여통 가까운 이력서가
접수될 정도로 창사 이후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 고향이 좋다 ="귀거래사"를 실천하는 직장인 및 실직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

농림부에 따르면 올들어 매달 10만여명이 도시생활을 벗어 던지고 농.어촌
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 때문에 그동안 줄곧 내리막길을 걷던 농.어업 종사자 수가 18년만에
처음으로 증가세로 돌아섰다.

얼마전 실직의 대책을 묻는 조사에서 재취업(41%) 창업(31%)에 귀농이
당당히 3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 외제상표를 감춰라 =요즘 고가 외제품을 파는 백화점에서는 주위를
재빨리 둘러보고 매장에 잠입하는(?) 고객들이 생겨나고 있다.

IMF 이후 더욱 심해진 "외제품 혐오 현상"을 의식해서다.

폴로 라꼬스떼 등 고급 수입브랜드를 팔고 있는 의류매장에서도 요즘 고객
들로부터 이색적인 요청을 더러 받는다.

"옷에 붙어 있는 라벨을 떼줄 수 없느냐"는 것이다.

벤츠 BMW 등 고급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중에서는 차량 마크를 떼어내고
다니는 운전자도 많아졌다.

<> 복고풍이 유행한다 =의식주 전반에 걸쳐 복고풍이 유행하고 있다.

모나미볼펜 삼양라면 내의 등 뽀빠이 부라보콘 자장면 등이 대표적이다.

언론이나 TV프로그램 광고물 등에서도 복고풍은 이미 대세를 이루고 있다.

좋았던 과거에 대한 향수로 고달픈 현실을 달래고 있는 것이다.

<> 알뜰결혼이 확산된다 ="거품의 대명사" 격인 결혼에도 알뜰풍조가 확산
되고 있다.

체면이나 자존심대신 실속이 최우선으로 고려되고 있는 것이다.

결혼식장대신 구민회관이나 야외무료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혼수품 신혼여행도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실속파들이 급증하고 있다.

<> 늘어나는 시집살이 =생활비 절약을 위한 방편으로 시댁살이를 선호하는
부부들이 늘고 있다.

IMF가 사라져가는 전통중 하나인 시댁살이를 극적으로 부활시키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 결혼정보회사가 20~30대 남녀 각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시부모와 동거를 원하는 여성이 IMF 이전보다 두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 실직형 이혼이 늘고 있다 =실직 후 아내마저 잃는 남편들이 급증하고
있다.

남편의 경제력 때문에 그동안 억지로 참고 살던 아내들이 더이상 같이 살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이혼이 늘다보니 이혼관련산업도 부상하고 있다.

이혼관련 서적들이 잘 팔리고 이혼자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결혼주선업체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 브레인 드레인 현상 =장래를 위해 미련없이 한국을 떠나는 고급인력이
늘고 있다.

정보통신 관련 엔지니어에서부터 컴퓨터프로그래머 전기 전자분야 기술자
등 전문인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해외이민설명회가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 류성 기자 star@ >

[ 알뜰구매 유행어 ]

<> 미끼족 =턱없이 얇아진 지갑은 소비자의 쇼핑행태를 철저한 이코노스타일
로 변모시켰다.

브랜드를 중시했던 IMF체제전의 쇼핑습관은 어느새 실용적 가치추구형으로
바뀌고 주부들의 장바구니에는 유통업체들이 고객확보를 위해 뿌린 초염가
상품의 광고전단이 필수준비품으로 담겨졌다.

미끼상품은 유통업체들이 고객의 추가구매행위를 기대하며 손해를 감수하면
서 싸게 파는 상품을 일컫는 말이지만 IMF시대에는 이같은 유인전략이 먹혀
들지 않았다.

절약정신으로 무장한 알뜰소비자는 식품, 생활용품을 중심으로 유통업체들이
경쟁적으로 내건 미끼상품만을 구매하고는 곧바로 매장문을 나서기 일쑤다.

유통업체 관계자들은 이같은 소비자가 야속하기는 했어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으며 자연스럽게 이들을 가리키는 미끼족이라는 용어를 탄생시켰다.

고객확보전이 불을 뿜으면서 미끼상품은 저가의 식품, 생활용품류에서
하반기들어 대형TV, 전자레인지, 세탁기 등의 고가품으로까지 종류가
다양해졌다.

또 TV홈쇼핑, 통신판매업체 등 무점포판매업체들까지 매출경쟁에 가세하면서
여행, 이사서비스, 결혼서비스 등의 무형상품에서도 전략성 미끼상품이 등장
했다.

<> 올빼미족 =수입이 줄자 소비자들은 생선, 과일, 채소 등 신선도에 따라
가격차이가 큰 상품이 값싸게 판매되는 저녁늦게야 쇼핑에 나서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쩔 수 없이 식탁에 올려야 하는 식료품을 되도록이면 늦은 시간을 틈타
싸게 구입하려는 새로운 쇼핑문화가 등장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형유통업체들은 신선도가 중요한 상품의 경우 당일 모두 판매
하기위해 오후 8시 이후부터 신선식품의 가격을 큰 폭으로 내린다.

남편의 실직이 늘어나는 것도 올빼미족을 늘린 주요 원인이 된 것으로 유통
업체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또 취업전선에 나서는 주부가 많아지면서 불가피하게 밤늦은 시간에 쇼핑을
해야 하는 사례가 증가한 것도 올빼미쇼핑의 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와함께 주부 여러명이 모여 가격이 더욱 저렴한 묶음상품과 떨이상품을
사서 나누기위해 심야에 할인점 등을 찾는 경우도 IMF시대의 새로운 풍속도로
자리잡았다.

유통업체 관계자들은 매장이 문을 연 직후 등 상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일부시간대에만 상품을 집중 구입하는 "타임서비스족"의 확산도 IMF시대의
또다른 진풍경으로 꼽고 있다.

< 김도경 기자 infofes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