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 < 신한경영연구소 고문. 방송인
www.hanwoo.com >

지난주에 서울특별시장의 초대로 "서울역사문화탐방"행사에 갈 기회가
있었다.

주한외국대사들을 비롯한 많은 외국인들이 참석한 이 행사를 통해
오래간만에 서울의 참된 멋을 느낄 수 있었다.

종묘에서 창경궁, 창덕궁, 비원까지 도는 두 시간 정도의 느긋한 산책을
하는 가운데 중간중간에 짧은 공연을 보여주기도해 조선시대의 문화를 매우
생동감 있게 체험할 수 있었다.

고궁 여기저기에 깔려 있는 돌들의 거칠고 꾸미지 않은 표면이 자연스러움과
동시에 세련된 멋을 지니고 있 다.

같이 갔던 외국인들에게 안내하시는 교수님이 이렇게 설명했다.

이 돌들의 표면을 매끄럽게 손질하지 않는 이유는 미학적인 차원도 있지만,
실용적인 면도 있다.

표면이 거칠거칠하니까 햇빛이 반사되지 않고 그 돌 위에 걷는 사람의 눈이
피로하지 않는다.

비원을 돌아보았을 때 내 옆에 가고 있던 한 외국대사가 참 재미있는 질문
을 했다.

"고궁 안에 왜 이렇게 담이 많아요?

건물 하나 하나마다 담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옛날 임금님들이 답답하지
않았을까요?"

그 질문을 듣고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한옥은 둘러싼 담이 있어야 멋이 있고 왜소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늘 느껴왔었다.

그리고 한옥의 담은 미학적 역할 외에도 외부로부터 시야를 막는 역할을
하면서 아담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기에 지금까지 한국의 담들이
답답하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그분에겐 이렇게 설명했다.

"고궁 안에 많은 담들이 높지도 않고 여기저기 늘 열려있는 문들이
있으니까 통제하거나 무언가를 막는 역할보다 그림의 액자와 같이 미학적인
분위기를 창출하는 역할을 한다"고..

이 말을 하면서 나는 우리 사회에서도 수 많은 담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

우리 사회 경제 금융 교육 등의 발전에 장애되는 이런 담들이 빨리 고궁의
담들처럼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냐는 생각을 해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