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정거래위원회에 계좌추적권을 부여키로 결론을 내린 것은 문제가
있다. 비록 당초 공정위의 요청과는 달리 금융감독위원회를 통한 간접적인
방법으로 3년간 한시 적용키로 했다고는 하지만 금융실명거래제 시행과 함께
강화한 예금자비밀보호의 취지를 훼손시키는 효과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직접적인 행사보다 자료노출의 우회과정이 길어 그 파급효과가 더
커질 소지도 없지않다.

물론 공정위의 주장대로 부당내부거래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계열기업들간의
자금이동 경로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 불법지원 여부를 가려내기가 쉽지않다
는 애로는 우리도 어느정도 인정한다. 그러나 이는 정부에 주어진 대부분의
감독권행사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일반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때문에 계좌추적권을 부여받아야 내부거래를 조사할 수 있다는 것은 지나친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경제의 고질적 병폐인 관치는 다름
아닌 그러한 행정편의주의에서비롯되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또 예금자 비밀보호에 구멍이 생김으로써 나타나는 부정적 효과는 부당내부
거래 근절이라는 긍정적 효과보다 더 크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단순히
개인 또는 기업활동 보호차원을 넘어 금융저축을 저해하고 금융기관 이용을
회피함으로써 금융질서를 교란시킬 우려마저 있다.

정부가 한시 적용기간을 3년으로 설정한 것은 기업구조조정이 대충 마무리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기업의 구조조정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계좌추적권을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한 셈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정부가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해온 시장경제기능 활성화와
자율적인 기업구조조정과의 상충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럽다.

과연 적용시한이 3년으로 끝날지도 의문이다. 그동안 수많은 한시법이
제정됐지만 연장되지 않고 폐기된 경우는 드물다. 더구나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권한을 공정위가 쉽게 포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도 우리의 금융거래에 대한 비밀보장은 선진국에 비해 형편없이 낮은
수준이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법에서 금융거래정보를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만도 법원의 제출명령이나 영장제시의 경우를 비롯 과세자료확인,
국정조사, 금융감독, 금융기관간 업무협조의 경우 등으로 매우 광범하다.
감사원법 공직자윤리법 공직선거 및 부정방지법 등에서도 금융거래 정보요구
권이 인정되고 있다.

여기에 공정위가 추가된다면 실로 금융거래의 비밀보장을 법으로 규정한 것
자체가 무색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행정편의주의적이고 관치의 대표적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큰
계좌추적권을 공정위에 추가 부여하는 문제는 재고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