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증권타운의 "밤공기"는 그날의 주가에 좌우된다.

주가가 오른 날에는 증권맨의 술잔은 높아지고 여의도는 열기로 뒤덥인다.

내린 날엔 썰렁한 냉기만 엄습할 뿐이다.

전날의 달작지근한 술맛도 온데간데 없다.

증권브로커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세상에 주가예측만큼 힘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맞는 말일 게다.

하지만 증권시장에서는 주가예측은 물론 "주가를 만들어 가는 사람"도 있다.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의 백운(35) 과장.

증권업계 간판급 애널리스트(기업분석가)로 통한다.

3년연속 기관투자가들로부터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뽑힌 경력을 갖고 있다.

기업의 가치를 평가해 적정 주가를 산출하고 향후 주가추이를 예측하는게
그의 일이다.

업종은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업.

은행이나 증권회사의 주가는 백 과장의 "말 한마디"에 오르락 내리락하기
일쑤다.

가령 "OO은행 매도추천"이라는 보고서를 내는 날에는 잘 오르던 주가도
맥을 못추고 고꾸라진다.

주식투자에 도사라고 자부하는 펀드매니저조차 그의 "고견"을 들은 후
의사결정을 할 정도다.

이런 그를 두고 증권업계는 "주가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알짜배기 회사인데도 주가가 저평가돼 있는 이른바 "진주"를 발견해 주가를
적정수준으로 끌어 올려 놓는다.

과대평가된 주식에 대해선 "경계" 신호를 보내 적정가격으로 되돌린다.

그가 애널리스트 길로 들어선 것은 91년.

첫 직장인 대우경제연구소에 입사하면서부터다.

입사후 경영컨설턴트로 1년간 일한 뒤 애널리스트로 자리를 옮겼다.

사실 그때까지만해도 애널리스트는 인기직종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가 맡은 분야는 비인기 종목이었던 보험이었다.

애널리스트로 변신한지 겨우 6개월여 지났을까.

92년 6월께였다.

최대 보험사인 삼성화재의 주가는 6만~7만원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그때 그는 난데없이 "삼성화재 주가는 지나치게 저평가돼 있다.

적정주가는 40만원.

적극 매수하라"라는 내용의 장문의 리포트를 냈다.

증권가는 신참내기 애널리스트의 황당한 보고서에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2년뒤 삼성화재 주가는 50만원까지 치솟았다.

그의 예측은 적중했다.

사람을 평가하는데 지나치리 만큼 인색한 증권업계 역시 그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애널리스트 백운"은 이렇게 태어났다.

백 과장은 95년8월 대우경제연구소를 나올 때까지 3년반동안 보험업계만
탐구했다.

잠시 엥도수에즈WI카증권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삼성증권으로 스카우트됐다.

그때부터 은행 증권 종금 리스 금고 등으로 분석영역을 넓히면서 "금융
애널리스트"로 재도약했다.

현재 맡고 있는 상장회사만 줄잡아 80개가 넘는다.

개인시간이란 생각할수 없다.

그의 일과는 조간신문과 밤사이 나라밖에서 날아온 해외뉴스를 챙기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나 하나가 국내 금융산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쳐 주가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오전 8시15분 열리는 국제전화회의 때까지 각 종목에 대한 의견을 "매도
(sell)" "매수(buy)" "보유(hold)" 등으로 나눈다.

그런 다음 구체적인 자료를 낸다.

업종 전반에 대해 쓸 때도 있고 한 회사에 포커스를 맞출때도 있다.

분량은 하루평균 A4 용지 3~4장 정도.

숫자 하나 챙기기 위해 2~3일이 걸릴 때도 있다고 한다.

잘못된 리포트로 인해 주식투자자들이 엉뚱한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
이다.

펀드매니저나 증권사 브로커들의 전화를 받는 것도 중요 일과다.

하루평균 30~1백통.

"OO은행의 주식을 사려고 하는데 사도 됩니까"란 내용이 주류다.

기자들의 전화도 꽤 있다고 귀띔한다.

백 과장이 기업방문을 가면 도리어 "컨설팅"을 해줄 때가 더 많다.

그래서 은행 보험업계에서 백과장을 컨설턴트로 여기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 역시 "완벽한 애널리스트는 단순히 기업가치를 분석하고 적정주가를
찾아내는데 그쳐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기업이 나아가야할 길을 안내할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백 과장은 자신을 종종 주식시장의 "경비병"에 비유한다.

"애널리스트가 정확한 보고서를 낸다면 인위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리는
작전세력이 주식시장에 발을 붙일 수 없을 겁니다"

< 장진모 기자 ja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