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중 <현대자동차 총괄사장 sjkim@hyundai-motor.com>

멀리서 소리없이 달려와서 비단처럼 매끄럽게 스쳐 지나가는 은빛 자동차.

그 모습을 보고 어떤 기자는 "실버 고스트(은빛 유령)"라고 일컫기도 했다.

그러나 편안함 때문에 "달리는 별장"이라고 불리기도 한 자동차가 인간에게
이득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무서운 흉기가 되어 우리를 죽음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저자 마가렛 미첼 여사는 택시에 치어 중상을
입은 후 죽었고, "이방인"의 저자 알베르토 카뮈는 차를 몰고 가다가 가로수
를 들이받아 44세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시속 1백30km의 속도로 포르쉐550을 몰고 가다 숨을 거둔 미국 젊은이의
우상, 제임스 딘을 우리는 아직도 기억한다.

이렇듯 요절한 명사들의 죽음 뒤에는 바로 "성난 자동차"가 있었다.

반면에, 자식을 돌보듯 자동차를 사랑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늘 자동차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끝없는 애정을 과시한다.

몸체를 손수 깨끗이 닦아주고 쓰다듬으면서 "제발 성내지 말고 안전하게
달려달라"고 타이르기까지 한다.

어쩌다 찌그러지기라도 하면 그 부위에 손을 갖다대고 자신의 신체의 일부분
인 양 아픔을 느끼며 애타는 마음으로 자동차와 대화를 나눈다.

게다가 각종 오일이며 냉각수, 배터리, 브레이크 등은 이상이 없는지 긴장
을 늦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남을 먼저 생각하고 운전하며 "슬쩍 법을 어기는 습관
이 있는 사람은 언젠가는 그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라며 교통 법규를 철저히
지킨다.

그래서 그의 자동차는 성내는 법이 없다.

사람들은 자동차를 문명의 이기, 기계의 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일시에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끔찍한 자동차 사고소식을 들을 때마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있으면 귀찮고 없으면 불편한 것이 아내와 자동차라고 곧잘 우스겟소리를
하지만, 반대로 처음 만났을 때의 아내를 생각하듯 자동차도 처음 구입했을
때의 마음으로 운전한다면 자동차가 인간을 해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