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발표된 규제개혁위원회의 기존규제에 대한 일제 정비 결과는 종래와는
달리 상당히 의욕적이라는 평가를 받을만 하다. 우선 폐지율이 50%에 육박한
것은 예상밖의 성과다. 물론 그같은 폐지율제고의 이면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지시가 큰 힘을 발휘한 것이긴 하지만 뒤늦게나마 각 부처가 규제폐지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연내 폐지율 47.9%도 국제협약이행 환경보호 안전유지 등 존치가 불가피한
규제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70%에 육박한다는 것이 국무조정실의 설명이다.
특히 가정의례법등 23개법률을 통째로 폐지한 것은 절차간소화등에 치우쳤던
과거에 비해 매우 적극적인 방법을 동원했다고 볼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이라고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는게 우리 생각이다.
후속조치들이 얼마나 실효성있게 추진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규제개혁위원회의 의결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우선 법개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현재 규제개혁과 관련돼 고쳐야 할 법률만도 3백50여개나
된다. 더구나 규제완화로 인해 이해가 상바나되는 집단이 많아 국회심의
과정에서 치열한 로비전도 예상된다.

규제개혁이 차질없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국회의 관련법률 개정이 보다
신속하게 이뤄져야 하고, 집단이기주의에 영향을 받지 않는 객관적인 심의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우선 강조하고 싶다.

또 건수로 기존규제의 절반 가까이를 폐지한다고 했지만 기업활동과
국민생활 불편해소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각 부처가
숫자목표 달성을 위해 사전준비나 후속대책없이 무리하게 폐지한 것들이
있는가 하면 국민생활과 큰 상관이 없는 건수위주의 정비가 상당수에
달한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규제폐지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보완책을 강구하는 동시에
보다 근본적인 핵심규제들에 대한 개혁작업의 고삐는 더욱 죄어가야 할
것이다. 앞으로의 규제개혁은 기존법규의 조항 몇개를 삭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 법률의 법정신과 체제 자체를 급변하는 경제사회여건에 맞도록
전면 개편하는 작업이어야 한다. 그같은 작업은 관련되는 모든 법률과
제도를 함께 재조명해야만 실효성있게 추진될 수 있다.

주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규제정비도 시급한
과제중의 하나다. 공직자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하고 규제개혁에 걸맞은
정부조직 개편도 이뤄져야 한다. 반면 더욱 강화돼야할 규제를 가려내는
일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규제개혁은 그같은 각 부문의 개혁이 함께
이뤄질때 제기능을 발휘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규제의 일제정비가 일단락됐다고는 하지만 규제개혁위원회가 지금부터
해야할 일은 규제개혁의 비전과 목표를 보다 명확히 하고 개혁의지가
퇴색되지 않도록 지속적인 추진을 재다짐하는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