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널뛰기는 끝났다"

뉴욕증시의 다우존스 지수가 최근 가파른 상승세를 거듭하면서 월가
투자자들 사이에 이런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불과 보름 전까지도 7,000대에서 등락을 반복하던 다우존스 지수가 어느새
9,000선 턱앞으로까지 되올랐으니 그럴 만도 하다.

주식을 투매하고 채권 쪽으로 돌아섰던 투자자들이 다시 주식시장으로
돌아서는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주 다우지수가 닷새 연속 상승행진을 한 것이 단적인 예다.

일부 분석가들은 다우지수가 올 연말까지는 9,500선에 도달할 것이라는
장미빛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그러나 미국 경제의 속내를 잘 아는 전문가들은 월가의 이런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실물경제가 완연한 하강곡선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주가가 연일 큰 폭
으로 오르는 현상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실물 중의 실물"이라 할 제조업은 "불황"이라는 단어를 떠 올리게
할 정도로 부진의 늪으로 빠져 들고 있다.

지난 10월 한달 동안 미국 제조업체들이 5만2천명의 인력을 순감시킨
것으로 집계됐을 정도다.

아시아 독감이 미국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지난 3월 이후
미국 제조업계에서 사라진 일자리는 20만명 분에 이른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지난 9월과 10월 중에 제조업체들이 발표한 인원정리 규모만도 각각
7만3천명과 9만1천명에 달한다.

직장에서 쫓겨나는 제조업 근로자들이 앞으로 더욱 불어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제조업의 불황은 아시아 등 개도국의 외환위기와 맞물려 금융 서비스 등
다른 부문에도 작지않은 여진을 일으키고 있다.

메릴린치 시티코프 등 월가 금융기관들이 대규모 손실의 여파로 잇달아
대량 정리해고에 착수한 것이 그 신호탄이다.

물론 증시활황을 뒷받침할 호재도 적지 않은게 사실이기는 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최근 두 차례에 걸쳐 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한 것이 대표적 호재다.

여기에다 FRB가 오는 17일로 예정된 공개시장 위원회에서 3차 금리인하를
단행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더해지고 있다.

지난 3.4분기 경제성장률이 예상을 뒤엎고 3.3%의 견실한 성적을 냈다는
사실도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씻어내는 데 한몫 거들고 있다.

최악의 사태를 우려케 했던 브라질의 외환위기가 잠잠해진 것도 증시엔
호재다.

최근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클린턴의 집권 민주당이 압승을 거둔 것 역시
증시엔 도움이 됐다.

이들 호재에 떠받쳐져 증시가 활황을 되찾으면서 미국 경제계 일각에서는
고성장과 저실업,저인플레의 동시 진행이라는 "신경제"의 위력이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가 또다시 일고 있다.

증시가 살아 있는 한 소비경기가 주도하는 미국의 신경제는 건재할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실물이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증시의 활황은 한낱 "거품"일 수
밖에 없다는 반론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의 뉴욕증시 호황은 미국경제가 잘 돌아가서라기 보다는 세계의 뭉칫
돈들이 달리 갈 곳을 찾지 못한 결과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아시아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러시아와 중남미 전역으로 확산된데 이어
비교적 건실했던 중국과 싱가포르 등도 디플레이션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는게 사실이다.

또 유럽경제도 세계 동시불황의 여파로 급격히 둔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현실이 한 때 월가를 이탈했던 돈줄을 다시 뉴욕 증시로 되돌렸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뉴욕증시의 회복은 세계경제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는 반증에
불과하다는 해석도 있다.

월가의 "되찾은 활력"을 마냥 반길 일 만도 아니라는 얘기다.

지금 세계는 갈 곳 잃은 돈들이 월가를 무대로 빚어내고 있는 또 한번의
"거품 행진곡"을 보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