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시인 천양희(56)씨와 노향림(56)씨가 신작시집을 나란히 출간했다.

천씨의 "오래된 골목"과 노씨의 "후투티가 오지 않는 섬"(창작과비평사).

이들은 고단한 일상의 텃밭에서 삶의 근원적인 의미를 하나씩 캐낸다.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통해 무욕과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

시력 30여년의 연륜으로 비춰내는 성찰의 뿌리가 깊고 넓다.

천양희씨는 명상적인 시풍으로 생의 이면을 조용하게 응시한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물의 이미지를 많이 차용하면서 독특한 상상력을
펼쳐보인다.

"누구의 생도 물같지는 않았지요/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물같이 사는
것이었지요/그때서야 어려운 것이 좋을 수도 있다는 걸 겨우 알았지요"
(''물에게 길을 묻다'')

사람들이 아무 생각없이 돌팔매질을 하는 강변에서 "돌 하나가 강을 흔들어
놓는다"며 세상의 파문을 온 몸으로 막아내는 시인.

그 물아일체의 경지에서 "던진 돌에 맞은 건 강인데 내가 다 아프다"는
잠언도 나온다.

그는 새벽시장을 보러 나섰다가 가로수들이 텅 빈 것을 보고 "내가 너무
껴입었구나"라며 "썩어 거름된 잎들"의 의미를 떠올린다.

길가의 철물점에서도 "구르지 않는 바퀴를 보면/명퇴당한 아비들 같아/
덜커덕, 숨이 멎는다"(''바퀴'')며 "속력은 모두 바퀴 때문"이라는 섭리를
일깨운다.

노향림씨는 고통이 얼마나 소중한 자양분인가를 얘기한다.

그는 딱딱한 나무껍질 속으로 수액을 흘려 넣듯 상처입은 이웃들을 어루
만진다.

오랫동안 병마와 싸워온 시인은 불길한 전조의 새로 알려져 있는 후투티가
자신의 섬에 날아와 스스로를 변화시키기를 바란다.

그 새를 축복의 전령으로 삼겠다는 의지다.

어떨 때는 봄비를 맞으며 제 몸을 유심히 들여다 보는 나무가 되어 "수없이
튼 살갗"의 흔적과 "한 때 농익은 열매를 매달고 놀던 무성생식의 까만 젖꼭
지"를 되살린다.

묵은 김칫독을 들어낸 구덩이처럼 단발머리 중학생 시절의 꿈이 쑥 뽑아져
나온 자리에서는 "환히 어두어져오는" 봄밤을 만들어낸다.

과거와 현실의 시간이 사진첩을 넘기듯 교차하는 자리에서 시인의 내면은
더욱 넓어진다.

이쯤 되면 "텅 빈 돌계단 위에 야윈 고목나무들이/무릎꿇고 황공한 듯 두
손을 모으는" 자연의 이치까지 눈에 잡히는가보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9일자 ).